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희빈은 인현왕후의 중전자리를 탐낸 나머지 궁중에
몰래 신당을 차려놓고 무녀를 불러들여 왕후를 저주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장희빈은 결국 사약을 받고 죽지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가
재미있다.

무녀와 결탁해 자기 아버지 장현의 묘에다 나무인형과 나무칼을 꽂아놓은 뒤
그것을 왕후가 세자를 저주하기 위해 한 짓인양 뒤집어 씌운 것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친정인 장씨 일가와 사건에 관계된 무녀 궁녀는 물론 그의 배후세력이었던
소론이 큰 화를 입었다.

후궁들의 저주행위는 중종 광해군 인조 효종때도 발각돼 물의를 일으켰다.

물론 장희빈처럼 조작해 놓고 죄없는 이에게 뒤집어 씌운 예도 적지않다.

무녀들은 전승돼 내려오는 방술을 후궁들에게 전했다.

죽은이의 기가 땅속에 살아있다 믿고 사체의 일부를 저주하려는 사람의
거처 가까이에 묻는 방법을 썼다.

그것은 영을 부려서 저주하게 한다는 사령저주라는 것으로 무당 기능의
하나이기도 했다.

죽은 사람의 두개골 손 발 치아 손톱 머리카락은 물론 쥐 고양이의 뼈까지
묻어 영혼의 사악한 기운이 산사람의 기를 억눌러 서서히 병들어 죽게한다고
믿었다.

어제 충남 아산의 이순신 장군 묘를 비롯 가족묘 33기에 무려 55자루의
식칼과 47개의 정을 꽂은 무녀가 경찰에 잡혔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덕수이씨와 다른 문중과의 원한관계가 빚어낸
저주행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무녀의 범행동기는 너무나도 엉뚱했다.

땅의 기운이 왕성한 명당 묘지의 혈을 끊어버림으로써 그 지기 속에
들어있을 장군의 기운을 받아들여 자신의 지병을 고치려 했다고 한다.

문제해결 방법이 막힌 암울한 우리사회의 기층의식의 단면을 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상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고 믿기때문에 이런 미개한
방법이라도 써보는 것이라면 너무 무모한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