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치 <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

수사를 하다보면 수사 한계와 국민 법감정과의 괴리때문에 고민해야 할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92년 일본 도쿄 사가와 규빈 사건이다.

일본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다 일본 정계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가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가네마루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입건하고 벌금 20만엔에 약식기소
했다.

그런데 이는 엄청난 국민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5억엔이라는 거금을 받았는데 어떻게 고작20만엔의 약식기소밖에 하지
않는냐는 질타였다.

검찰의 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이른바 "법불아귀"를 떠올리게 했으리라.

법불아귀란 법은 귀한자에게 아첨하지 않아야한다는 한비자의 법언이다.

그러나 검찰은 그런 처분밖에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받은 5억엔은 직무와 관련성이 없어 형법상 중.수뢰죄로
처벌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자금법 위반으로만 입건하게 됐다.

게다가 이 법의 처벌규정에는 징역형은 없고 벌금 20만엔이 최고형량이었다.

어쨌든 여론에 시달리던 일본 검찰은 이듬해인 93년 3월 6일 탈세혐의로
그를 전격 구속했다.

이른바 "표적수사"를 한 셈이다.

그러나 국민불신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검찰의 처분을 받은 사람을 다시
탈세로 구속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것은 또 다른 법의 형평성 문제를 낳을 우려가 있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든다.

최근 고급공무원 집을 턴 어느 도둑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급공무원이라고 해 "봐주기 식" 수사를 해서는 안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국민의 정서에 짜맞추기 식" 수사를 해서도 안될 것이다.

또 물건을 훔친 도둑의 인격이 보호돼야하는 것처럼 피해를 당한 고급공무원
의 명예도 다른 피해자들과 똑같이 존중돼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