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불마무광(옥은 닦지 않으면 빛이 안난다)"

김&장법률사무소가 들어 있는 종로구 내자동 세양빌딩 10층.

3평이 채 못되는 작은 방이지만 정경택 변호사(47.김&장법률사무소)
사무실은 운치가 있다.

멀리 인왕산이 보이고 걸지못한 액자를 포함해 서예작품과 그림이 "전시"돼
있다.

그는 이 다섯자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70년대말 제주도에서 해군법무관으로 일할 때 향토서예가가 선물로 준
서예작품.

글씨가 힘차고 뜻도 좋아 좌우명으로 삼았단다.

일하는 스타일도 좌우명 그대로다.

합작투자는 관습과 법률이 다른 외국과의 비즈니스인 탓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적게는 6개월, 긴 경우에는 1년 6개월이 넘을 때도 있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성격도 세심해야 한다.

업계에선 그래서 합작투자 변호사를 "결혼 중매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같이 살아보자고 만나는 것이니 만큼 처음부터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네고(negotiation:협상)를 할 때도 상대를 지나치게 압박하는건 피해야지요.
서로 만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하게 되면 앞날이 순탄치 않은거나
마찬가지예요"

결혼식을 치렀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계약이 성사된 다음에도 자문해야 할 건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기업관련 규제가 적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애프터서비스를 계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합작이 이뤄지면 양사는 공동운명체가 되고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설명
이다.

이렇게 출발한 공동운명체가 "자식"을 낳고 날로 번창해 갈 때가 가장
보람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 83년께 그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미국 GM(제너럴모터스)과
대우자동차와의 신차 개발 투자건을 맡았다.

당시 이미 50대 50으로 합작하고 있던 두 회사는 GM의 자회사인 독일
오펠사가 개발한 "카데트"와 같은 모델의 새 차를 만들기로 했다.

투자비는 당시로선 큰 금액인 6천만달러.

대우는 신차에 목말라 있을 때였고 GM도 새로운 세계 전략차원에서 한국
에서 신차를 만들고 싶어했다.

옥동자가 탄생했다.

86년 7월 선보인 "르망"이 바로 그것이다.

GM 상표 "폰티악르망"을 달고 미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결혼뿐 아니라 아들까지 받아주는 "산파" 역할도 하는 이가 바로 합작투자
변호사인 셈이다.

합작사가 우량회사로 커갈 때는 보람도 함께 커진다.

쌍용정유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지난 91년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측의 대리인으로 쌍용정유와의
합작건을 다뤘다.

당시 투자금액 4억달러는 민간기업으로선 사상 최대였다.

쌍용정유는 이후 정유업계는 물론 국내 여타 기업에 모범이 되는 우량기업
으로 성장했다.

정 변호사는 외자유치에 관한 한 "많은면 많을 수록 좋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아직 우리 기업들이 외국에 비해 기반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또
긍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아요. 외자가 몰려드는 나라는 국가신인도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지요"

정 변호사는 김흥한, 김영무 변호사 등 1세대에 이어 우리 기업역사의
격동기인 80~90년대를 지켜봐 온 2세대 합작투자 변호사의 선두 주자다.

80년대 중반 미 AT&T와 LG와의 광통신 케이블 사업, GE와 삼성과의 의료
기기 사업을 포함 최근 P&G가 쌍용제지를 인수한 것까지 그의 손을 거친
투자건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업종도 자동차 정유 제약 화학 정보통신 소비재산업 등 다루지 않은 것이
없다.

"70~80년대에는 주로 제조업 중심의 합작투자가 많았지만 90년대 이후엔
무역 서비스 등으로 업종이 다양화되고 단독투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경기고를 거쳐 서울법대(70학번)를 수석 졸업한 그는 해군법무관을 마친
80년 김&장에 조인하면서 기업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당시 58명의 사법연수원 수료생 가운데 그를 포함해 신희택(71학번) 양영준
(72학번) 변호사 등 서울법대 선.후배 3명이 판.검사의 길을 걷지 않고
곧바로 김&장으로 오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86년에는 미 하버드대학에서 법학석사(LLM) 과정을 마치고 미국 변호사
자격도 땄다.

80년 공정거래법 입안에 참여했을 정도로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더 많은 인재들이 기업변호사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며 "기업변호사들이 전문화되고 팀웍을 제대로 발휘할 때
우리 경제의 경쟁력도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류성(정보통신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