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석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ripws@seri-samsung.org >

시장에서 거래 당사자의 한쪽이 상대방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를 악용할 수 있는 제도적인 허점이 있다면,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은
일방은 이를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하는 시장실패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보험시장과 같이 거래 당사자가 위험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킬 수 있는 경우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보험시장 등에서 계약의 사전 및 사후 단계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역선택이란 보험계약자가 보험회사보다 자신의 보험사고 발생위험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사고 위험이 높아서 보험금을 탈 가능성이 큰 사람이
주로 보험에 가입하는 현상을 말한다.

역선택은 계약이전 단계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 결과
보험계약자의 보험금 청구가 증가하여 보험회사의 손실이 증가하고 궁극적
으로는 보험료가 바람직한 수준 이상으로 인상되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도덕적 해이란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보험사고에 따르는 손실을 보험회사에
전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고에 대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현상을
말한다.

도덕적 해이는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의 보험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계약이후 단계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 결과 역시 보험료가 바람직한 수준 이상으로 인상되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개념은 보험시장 뿐만 아니라 정보가 비대칭적
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유인하는 보상체계가 미비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회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 사회적인 파장을 몰고 온 국민연금 전국민 확대실시 과정을 들여다
보면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현상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정부는 국민연금 전국민 확대 실시를 추진하면서 신규로 편입되는
소득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채 도시 자영업자에게 부정확한 일방적인 추계
자료를 기초로 신고권장소득을 통보했다.

이에 대해 자영업자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정부는 사태를 무마하기 위하여 의무가입제를 사실상 포기하고 임의가입제로
전환하는 선에서 당초의 확대실시를 강행하였다.

그런데 정부의 이러한 입장 전환으로 정작 심각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국민연금은 사회 보장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연금 보험료나 연금 수령액에
있어서 저소득층에게 유리한 하후상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임의가입제로 입장을 전환함에 따라 고소득자가 국민연금
가입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연금을 가입하더라도 신고소득을 낮추는 것이
유리하게 됐다.

보도에 따르면, 4월 현재 국민연금 소득신고율이 80%에 이르지만 이중
보험료를 내지 않는 납부예외자가 60%에 달하고, 소득신고자의 평균신고액이
90만원으로 봉급생활자의 148만원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소득정보를 연금관리공단보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비대칭적 정보구조하에서 임의가입제라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발생한
역선택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또 정확한 소득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국민연금의 부실화가 예견되는데도
임의가입제를 골자로 한 국민연금 확대실시를 강행한 정부의 태도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임의가입제로의 전환에 따른 연금의 부실문제는 서서히 나타나 차기 정권에
떠 넘길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조세부담과 연금가입자의 부담으로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제도 연기나 강제가입제 고수에 따른 부담을
모면하는 편의적인 정책을 사용한 도덕적 해이를 보인 것이다.

사실 그 동안 국민연금 기금운용이 부실화된 데는 이렇게 편의적으로 정책을
집행한 정부의 도덕적 해이에 기인한 바 크다.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결과는 국민연금의 부실화를 가져오고, 결국에는
국민의 조세부담과 소득을 정상적으로 신고한 자영업자나 소득정보가
투명하게 나타나는 봉급생활자의 연금 인상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해당사자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파장과 관련해서 보면, 정부가 모든 가입자의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성실하게 소득을 신고하는 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의 연금운용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도 필요하다.


[ 국민연금 파동으로 본 역선택 메커니즘 ]

<> 역선택
- 형태 : . 고소득자의 연금 가입 회피
. 연금 가입자의 소득 하향신고

- 원인 : . 소득정보의 비대칭성 연금가입자> 연금관리공단
. 제도적 허점-임의가입제로 전환

- 결과(폐혜) : . 국민 연금 부실화
. 국민의 조세부담 증가
. 성실 신고자의 연금 보험료 상승, 연금수령액
감소

<> 도덕적 해이
- 형태 : 연금 부실화를 무시한 편의적 정책 결정

- 원인 : . 연금운영 정보의 비대칭성 정부> 연금가입자(국민)
. 제도적 허점-연금운영 실적에 대한 공개제도 미비

- 결과(폐혜) : . 국민 연금 부실화
. 국민의 조세부담 증가
. 성실 신고자의 연금 보험료 상승, 연금수령액
감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