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시대의 직격탄을 맞은 사람은 바로 금리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이자가 작년 이맘때에 비해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액의 여유자금을 굴리는 사람은 그래도 낫다.

이자가 줄어 아쉽지는 하지만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그렇지만 이자를 받아 생활비를 쓰는 사람은 사정이 다르다.

예금금리가 떨어질수록 한달동안 사용할수 있는 생활비도 매년 줄어든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 떼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진 돈도
없고 용기도 모자란다.

원금을 깨서 야금야금 쓰든지,아니면 허리띠를 졸라맬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작년 2월 24년동안 다니던 은행에서 희망퇴직한 김모씨(51.서울 양천구
신정동)가 대표적 경우다.

김씨는 작년말만해도 "일찌감치 은행을 그만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작년 11월에 밀려난 동료들에 비하면 퇴직금이 훨씬 많아서였다.

김씨가 퇴직하면서 챙긴 퇴직금은 총 2억2천3백만원.

여기서 은행대출금 등을 갚고 1억7천9백만원을 손에 쥐었다.

작년 11월에 퇴직한 동료들에 비해 줄잡아 5천여만원 많았다.

뿐만 아니다.

퇴직금을 운용할 여건도 하늘과 땅 차이였다.

김씨가 퇴직할 당시의 금리는 연 20%에 육박했다.

반면 작년말엔 연 10% 수준에 불과했다.

김 씨는 퇴직후 1년동안은 푹 놀기로 했다.

나라경제가 엉망이라 창업도, 재취업도 힘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김씨는 손에 쥔 퇴직금 1억7천9백만원중 2천9백만원은 여유자금
으로 확보해 두고 1억5천만원을 금융권에 맡겼다.

1억원은 매달 이자가 지급되는 은행정기예금(연 18%)에 1년만기로 넣었다.

여기서 나오는 매달이자 1백50만원으로 생활을 유지할 요량이었다.

나머지 5천만원중 3천만원은 투신사수익증권을 샀다.

2천만원은 은행 신종적립신탁에 넣었다.

김씨는 지난 1년동안 걱정이 거의 없었다.

비록 "놀고 있다"는 주위의 눈총이 따가왔지만 적어도 돈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올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정기예금의 만기가 돌아왔는데 어디를 봐도 작년 만큼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자니 한없이 망설여졌다.

"새가슴"인 은행원의 성격에다 매달 일정액의 이자가 필요한 현실 때문
이었다.

그래서 김씨가 울며 겨자먹기로 잡은 상품이 은행특판정기예금.

그것도 1억원을 재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9.3%의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었다.

이에따라 김씨는 매달 받는 이자는 77만5천원.

1년전에 비해 정확히 반토막났다.

김씨는 급한 김에 신종적립신탁 만기분 2천만원을 찾아 주식형수익증권을
샀지만 아직까지 재미는 별로인 편이다.

김씨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은 수두룩하다.

작년만 해도 1백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재취업을 한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 사람들이 고금리를 위안삼아 "퇴직금의 이자를 따 먹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저금리시대의 정착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갈수록 예금금리가 하락함에 따라 손에 챙기는 이자도 줄어든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어찌된 일인지 예금도 마다한다.

그렇다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우선 장래가 불투명하다.

퇴직금을 날리면 생활이 힘든 마당에 이만한 모험을 감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 어느 정도는 거액의 여유자금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창업도 쉽지 않다.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벌면서 성공할수 있는 창업아이템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저금리시대의 정착은 이들 외에 월급쟁이와 거액예금보유자 등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힌게 사실이다.

특히 작년의 고금리의 이익을 맛본 사람들은 아직도 그 향수를 잊지 못한다.

현재의 금리로는 도무지 양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문을 부지런히 두드려보지만 아직까지는
작년같은 "달콤한 열매맛"은 맛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곳이 바로 단기예금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의 은행정기예금에 돈을 맡겨
놓는 것이다.

이자로 생활하면서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을 엿보자는 의도에서다.

이런 식으로 은행에 쌓인 대기성자금이 지난달에만 9조여원에 이른다.

이 돈의 상당액에는 금리생활자의 한숨이 묻어 있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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