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교수. 경제학 >

세계 유수한 대도시에는 대개 외국인 밀집 상거리가 있어 문화의 다양성을
맛보게 하지만 서울은 차이나타운도 발붙이지 못한 단조로운 도시다.

그만큼 외국인 영업에는 척박한 풍토였다.

환란 이후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크게 완화되었지만 아직도 외국인 손발을
묶는 갖가지 규제가 남아 있을 법하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인 기업들의 불만은 정부 관료의
규제 완화를 촉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특히 주한 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규제의 벽을 허무는데 기여한 바 적지
않았다.

동서고금 국적을 불문하고 기업인들은 모이면 장사 잇속을 궁리하는 모양
이다.

2백여년전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동업자들은 단지 오락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도 화제는 반드시 일반 국민들에게 불리한 음모를 꾸미거나 가격인상
을 궁리하는 얘기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전 암참은 한국에 투자 무역 전반의 현안들을 모아 연례보고서를 마련한
모양이다.

신문지상으로 알려진 단편적 사항만으로는 전체내용을 알 도리가 없지만
불만사항의 종류와 수준을 판가름할 수 있다.

여기에는 자동차분야 등 지난 수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온 요구사항들도
포함돼 있다.

이미 개선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불만인 모양이다.

무리하게 보이는 몇 가지만 짚어보기로 하자.

첫째, 지식 재산권 보호와 관련해서 법률제정 법규해석 또는 검찰수사강화
등의 요구는 자칫 주권국가의 사법권 침해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언론의
지적은 감정만 빼면 적절하다.

둘째, 농협 "하나로 마트"와 같이 생산자조합의 유통시설에서 수입농산물
판매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농협의 유통시설은 정부의 소유가 아니고 조합원인 전국 농민들이 제 농산물
을 팔려고 출자해 설치한 것이다.

그 시설에서 출자에 참여없는 외국의 수입농산물 판매를 정부라도 명령할
수 없다.

셋째, 금융 분야에서 외국은행 국내 지점의 건전성 기준을 지점 단위의
자본으로 보지 말고 모점을 포함한 전세계의 당해 은행 자본금은 합산해
적용하자는 요구는 해묵은 요구이다.

한국 금융감독당국은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지점의 건전성 규제에 주력하는
것이지 당해 은행의 세계 모든 지점의 자산건전성을 정보도 권한도 없이 감독
할 수 없다.

현재 정책당국은 지점의 갑기금과 일종의 차입금인 을기금의 합계액을
자본금으로 보아줌으로써 국내은행보다 영업상 유리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넷째, 금융감독은 본국의 책임이지 주재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이 무리
하다.

감독은 주재국주의가 대세이다.

선진국간의 합의가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97년말 환란이전 상당기간 뉴욕
런던 등지의 한국계 금융기관들이 주재국 감독당국으로부터 일일 출납보고
등 강도 높은 유동성 규제를 받은 전례는 무엇이었던가.

금융감독이 선진국계는 본국주의, 후진국계는 주재국주의로 차별화될 수
없다.

환란 와중에 민간대차관계를 정부보증으로 전환해 원금 한푼 떼이지 않고
고금리로 잘 굴린 미국은행들의 볼멘 소리가 크다는게 참으로 기이하다.

암참 보고서는 국내시장의 개방정도를 점검하게 하는 긍정적 내용이 많지만
무리한 요구들도 있다.

시장경제주의 본거지인 미국 상공인들이 한국정부를 부추겨 민간부문 개입을
독려하고 본국 정부를 자극해 세계무역기구(WTO)시대에도 "슈퍼 301조" 등
통상협상 무기동원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의 공세적 통상압력에 한국 정부는 무력하고, 국회는 딴전 보기에
바쁘다.

암참의 회원사들은 본국의 의회와 정부를 등에 업고 경기에 임하고, 한국
기업들은 그러한 원군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래서 암참의 외국기업 내국인 대우 요구가 실제로는 치외법권적 주장으로
들리는 대목이 없지 않다.

이것이 공평한 경기인가.

양국관계는 경제 이외에도 안보 정치 문화 등 다각적으로 얽혀있다.

암참은 미국에 호의적인 인사들의 입지를 좁히는 요구를 삼가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