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졸간에 접한 비보앞에 참담한 심경을 가눌길이 없습니다.

정인욱 회장님.

인간은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길이라지만 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어려운 나라 경제의 회복을 위해 아직도 하실 일이 너무나 많은데 홀연히
떠나시다니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회장님께서는 나라를 잃은 서러움에 암울하게 보내야 했던 시절인 1912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심깊은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애국의 꿈을 기르셨습니다.

와세다대 이공학부 채광야금과를 졸업한 뒤 해방후에 정부의 입각권유도
마다하고 52년 강원탄광을 설립하여, 사소한 기업의 이익보다는 오로지
구국일념의 순수함을 드높여 보이셨습니다.

참으로 기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인 높은 기개, 불타는 의욕과 큰
비전을 가진 지사적.국사적 품격의 기업가이셨습니다.

탄광개발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시자, 이를 토대로 54년에는 탄광보수용
기계공장과 주물공장을 설립해 오늘날 강원산업중공업 부문의 모체를
만드셨습니다.

특히 이승만대통령의 특명으로 57년부터 59년말까지 대한석탄공사 총재를
맡아 연 50~60%의 놀라운 석탄증산을 이룩한 수완을 보이셨습니다.

63년에는 자체생산한 무연탄을 직접 가공하는 공장을 건설, 삼표연탄의
신화를 창조하기도 하셨습니다.

노부모 등이 추운 겨울에 등을 따뜻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장님의 덕
이라고 항간에서 찬사가 자자했습니다.

이처럼 사업에서 번창을 거듭하신 것은 회장님의 나라를 바로세우려는
올곧은 사업철학과 탁월한 사업수단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70년대 들어서는 철강부문에 본격진출하여 민간기업으로서는 최초로 340만톤
규모의 철강생산공장을 완공하여 지금까지 한국 철강산업을 이끌어오신
주역이셨습니다.

무쇠같은 정력으로 경영을 진두지휘해오신 철강업계의 대부요 부도옹이신회
장님께서, 77년 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신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회장님은 60년대 이미 전경련의 창설주역으로서 향후 경제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시면서 전경련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셨던 재계의 선각적
지도자이셨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독자기술로 수직갱을 개발하셨고, 정경유착을 배격하며
기업윤리와 원칙을 창달하신 분입니다.

IMF위기를 겪다 보니 회장님의 선견과 가르침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정인욱 회장님.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는 벗어났다 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안목을 가지신 조국 근대화의 공로자로서 회장님의
원칙을 준수하는 철학과 사업보국의 정신은 우리 경제인들에게 매우 소중한
자산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 후배들은 회장님의 가르침과 고매한 뜻을 받들어 이를 후세에 전하고
우리 경제를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데 당당하게 일어서서 적극 매진할
것입니다.

부디 현세에 대한 상심은 훌훌 털어버리시고 영면하소서.

<1999 3. 26, 김입삼 전경련고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