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 LG경제연구원장 >


봄빛이 완연하다.

우리 경제도 봄을 맞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얘기하는 대로 우리 경제가 정말 건강하고 경쟁력있는 경제로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없이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모두들 궁금해한다.

이는 앞으로 세계화 정보화 지식화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를 맞이할 우리
경제, 우리나라의 명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몇몇 경제지표가 작년의 극심한 부진에 비해 호전기미를 보인다고
해서 결코 방심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 경제의 불안한 움직임을 제외하고라도 우리
경제의 활기를 결정짓는 소비 투자 수출은 아직 부진하며 실업률은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더욱이 우리 앞에는 해결해야 할 많은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우리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과 고착화된 모순이 얼마나 고쳐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의 앞길을 어렴풋이나마 내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방법으로 경제주체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돌아보자.

첫째, 정치권과 정부는 별로 변하지 않고 있다.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 봉사하는 정부 대신 회의와 좌절을 안겨 주는 정치,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정부의 모습은 아직도 여전하다.

정치개혁은 아직 논의단계이고 정부조직개편과 기능조정은 구호나 그 중요성
에 비해 참담한 결말을 맺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 비치는 관료조직은 예전과 똑같은 거대한 권력집단이자
이익집단에 다름 아니다.

둘째, 기업들 역시 갈 길이 멀다.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은 핵심역량의 절대적 부족, 세계표준과 동떨어진
후진적인 경영관행, 부실한 재무구조라는 치명적 약점을 여전히 안고 있다.

구조조정은 미흡하고 외형성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의 현실은 세계수준의 경영, 세계수준의 경쟁력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셋째, 국민들의 의식과 행태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정리해고는 제한적이며 일을 잘하나 못하나 비슷하게 나누며 살자는 형평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정부패 적당주의 연고주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퇴조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기강과 도덕윤리는 더욱 흐트러지고 있다.

재산과 소득분배는 더욱 편중되고 소비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면서 사회
계층간의 갈등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년동안 겉으로는 큰 변화가 있는 듯 하지만 우리 경제, 우리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개혁이 가장 집중되었던 금융부문을 살펴보자.

대규모의 자금 투입과 정리해고, 금융기관의 통폐합, 그리고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은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공적자금투입에 의한 부실자산 정리는 큰 혹만을 외과적으로 떼어낸
격이다.

아직도 금융 기관들은 크고 작은 부실자산과 잠재 부실자산을 안고 있다.

또 부실자산의 정리와 금융기관들이 금융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관치금융에서 벗어나야 하고 금융종사자들의 전문성이 높아져야 하며 도덕적
해이가 차단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시장다운 금융시장, 세계수준의 금융시장을 만들어 내야 금융개혁
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금융개혁을 포함한 모든 개혁은 아직 미완이며
개혁의 고삐를 늦추면 십중팔구 개혁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지난 1년 넘게 추진해 온 각종 개혁은 자유와 풍요가 넘치는 나라,
건강하고 반듯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고된 작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몇 세대에 걸쳐 뚜렷한 원칙과 의지를
갖고 제도와 의식을 함께 개혁해야 달성할 수 있는 어려운 목표다.

그러니 개혁은 요란스럽지 않게,그러나 일관성을 갖고 단호하게 차근차근
추진되어야 한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 구호만으로 개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며 좋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IMF사태 이전은 물론 IMF사태 이후의 1년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게을리
하고 현실에 밀려 개혁의 고삐를 늦춘다면 우리가 맞을 21세기는 좌절과
후회의 어두운 시대가 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