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가 오는 4월부터 시행할 예정으로 지난 21일 입법예고한 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지금까지 대출이나 지급보증에만 국한했던 "여신"
범위를 지급보증 대지급금, 어음.채권 매입액, 파생금융상품거래 등을
망라한 "신용공여" 개념으로 확대한 것이 주목된다. 이밖에 은행설립 인가
요건을 보다 구체화하고 임원선임 자격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역시 관심의 초점은 여신개념의 재정립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여신관리범위 확대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거래
상대방이 지급불능 상태가 되면 금융기관에 손실을 끼치게 되는 모든 금융
거래를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자본 범위를 BIS기준에
맞게 현재의 자본금, 적립금, 잉여금의 합계외에 후순위채 발행액, 대손
충당금 적립액, 유가증권 평가이익, 재평가 적립액 등 금융기관의 영업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보완자본도 포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신개념을 이런 식으로 바꾸는 것은 국제기준에 맞을 뿐아니라 이미 재경
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합의한 정책협의사항인 만큼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다만 개념정립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일은 또다른 문제다.
정책당국은 제도개편으로 인해 국민경제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여신개념을 바꾼다고 당장 총여신 규모가 줄어들지는 않더라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개별기업들은 자금관리에 적지 않은 추가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말 현재 19개 일반은행의 신용공여규모는 대출이 245조원, 지급
보증 42조원, 유가증권 135조원, 기타 파생금융상품 등 43조원 등 모두
465조원인데 이가운데 관리대상 신용공여가 약 62%인 178조원 늘어나는 대신
자기자본 역시 현재의 15조1천억원에서 25조4천억원으로 약 67%정도 증가해
자기자본 대비 여신비율은 비슷하다. 하지만 종전에는 관리대상에 포함하지
않던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을 새로 포함시킨 것이 문제다.

그동안 대출한도를 초과한 일부 대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은행이
인수하는 편법을 써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달부터는 이런 편법을
더이상 쓸 수 없게 되는데다 특히 내년 1월부터 2002년말까지 동일계열
신용공여한도 초과분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 대기업들이 겪을 자금관리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 같다. 또한가지 걱정은 대기업들이 자금관리에 어려움
을 겪을 경우 자칫 자금시장 전체가 교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예로 지난해 금융기관의 회사채보유 한도제가 시행된뒤 5대그룹의 회사채
발행액은 작년 10월 5조6천700억원에서 금년 2월 1조1천850억원으로 급감한
대신 유상증자가 봇물을 이루는 등 자금시장 기류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