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과천 정부청사에 가봤다.

정부조직개편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공직사회가 동요한다길래 궁금하기도 했다.

얼마전 유능한 경제관료가 민간기업으로 옮긴터라 더욱 그랬다.

공무원들이 과연 개혁에 겁을 먹고 과천을 떠나고 있는 걸까, 공무원들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의문이었다.

과천 정부청사에 가면 대부분 입구에서부터 주눅이 든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나무문짝처럼 생긴 탐지기를 지나야 하는 탓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그건 마찬가지였다.

엄청나게 크지만 멋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건물도 위축감이 들게 한다.

단지 건물만이 아니다.

초대형 동대문 시장건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마도 민원인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관료들이 있기 때문일게다.

정부조직개편을 하면 과천이 과연 달라질까.

동네마다 있는 구청과 동사무소가 친절하게 바뀔까.

불행히도 이런 생각은 부질없던 것이 돼버렸다.

정부조직개편이 없던 일로 끝났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시작하길래 "행여나"하고 기대를 걸어봤지만 "역시나"로 그쳤다.

국민들은 김칫국만 마시고 말았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조직개편의 핵심은 두가지였다.

조직을 합치거나 없애 군살을 뺀다는게 첫번째였다.

다른 하나는 민간인을 채용해 새로운 피를 수혈하겠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등 일부 부처를 통폐합한다고
제법 구체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얼굴만 내밀다 백지화됐다.

후자는 고위 공직자의 30%를 민간에서 뽑는다는 개방형 임용제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도 저도 별로 기대할 바가 없을것 같다.

일이 되어가는 낌새가 그렇다.

줄도 빽도 없는 공무원 몇명 내보내는데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조직개편소동을 감상한 기분은 컴퓨터에서 가상게임을 할때와 비슷
하다.

그럴듯한 구경을 한것 같은데 실은 아무것도 바뀐게 없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혼동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도 여기저기서 떠들어서 뭔가 달라졌겠지 하는 착각만 일으키고 말았다.

괜시리 현실감각만 없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불행히도 현실은 컴퓨터 게임보다 훨씬 못하다.

게임은 리세트만 누르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수 있다.

현실에서 리세트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다.

실패한 게임에 들어가는 비용도 엄청나다.

이번엔 무려 46억원이나 들었다.

컨설팅 비용만 그렇다.

그동안 공무원들이 조직을 방어하느라 낭비한 시간까지 합치면 수백억원도
넘을거다.

이만한 돈을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털려야 했다.

개혁을 외치는 정부가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새삼스럽게 되뇌일
필요조차 없다.

그렇지만 이번 정부조직개편소동은 앞으로 상당기간 공직사회의 개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만 각인시킨채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 사회엔 현실세계에서도 무슨 일이든지 가상게임처럼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리세트 증후군"만 확산된듯 하다.

리세트를 한번 누를 때마다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소요되고, 국민들은
여전히 과천청사나 동사무소에 드나들때 위축되고 움츠러 드는걸 감수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박영균 < 경제부장 yg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