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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30대 후반에 유학을 간 까닭에
우리 아이들은 몇 년동안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유학당시 하루는 큰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주었다.

친구들이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학생이라고 했더니 엄마가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단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돈은 누가 버느냐고 또 물어 어린 나이에도 대답이
궁해서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했다.

작은 아이도 어느 날 자기 집을 묘사하는 그림일기 숙제에서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서술부분에 직업을 빨리 가졌으면
좋겠다고 써놓은 적이 있다.

아마도 아버지의 직업이 없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높아 해고와 실직이 다반사인 미국에서도 아버지의
직업이 없다거나 가정의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부끄럽게
여겨지는데, 한국 사회에서 갑자기 가장이 실직자가 되었을 때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과 정신적인 충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직업은 생계수단일 뿐만 아니라 맡은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기도 하다.

최근 사회 각 부문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대량의 실직자가 양산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 현실은
실로 가슴아픈 일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비효율적이고 방만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겪어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며 누구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 실직자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빨리
경제가 회복되고 일자리가 늘어나 많은 우리의 동료들이 다시 직장을 갖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도록 남아있는 우리들이 맡은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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