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기/선박 금융 전문변호사 ]

자로 잰듯 늘어선 줄무늬의 비즈니스 수트.

흰색 와이셔츠 위로 단정히 늘어진 규칙적인 무늬의 넥타이.

김&장 법률사무소의 허익렬(44) 변호사는 첫 인상부터가 "모범생"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할것 같지 않은 정확성.

허 변호사는 차림새에서부터 이런 느낌을 풍긴다.

이런 분위기는 그의 직업과 무관치 않다.

그의 전문분야는 항공기나 선박을 구입할때 필요한 각종 금융및 법률자문을
해주는 선박및 항공기 파이낸싱.

특히 항공기 금융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국내 양대 항공사의 임대항공기중 90%이상이 허 변호사의 손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을 정도.

"계약서를 작성하는게 핵심업무죠.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일까지 가정하고, 그 경우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를 계약서에 명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약서 하나에
두꺼운 책 몇권의 분량씩 되는 경우도 많지요"

물론 계약서상 명시된 항목중 90%이상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논리적 사고력을 총동원, 모든 가능성을 적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논리력과 치밀한 성격"을 이 분야 전문가가 가져야할 가장
큰 덕목으로 꼽는다.

허 변호사를 처음 봤을때 풍겨 나오던 분위기가 역시 그냥 생긴게 아니었다.

계약서는 더할수 없이 쫀쫀히 검토해야 하지만 정작 다루는 물건의 덩치는
엄청나게 크다.

웬만한 선박이나 항공기는 1대에 1억~2억달러를 넘는다.

그 운동장만한 선박이나 항공기를 해부하는 일도 그의 업무중 하나.

예컨대 파이낸싱 과정에는 사들일 항공기의 담보설정계약도 들어 있다.

항공기의 담보가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얘기.

"비행기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엔진입니다. 같은 엔진이라도 유지보수
정도에 따라 가치가 왔다갔다 하지요"

그래서 그는 비행기에 대한 기계적인 전문지식도 갖추고 있다.

비행기 공부는 어떻게 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싱겁게도 "그냥 하다보니..."라고 답했다.

모든 질문에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설명하는 허 변호사지만 개인적인 질문에
이르면 영락없이 멋적은 웃음을 띠우며 얼버무린다.

금융변호사가 된 동기도 그랬다.

"연수를 마치고 김&장 법률사무소에 들어오게 됐고, 여기 있다보니
프로젝트 파이낸스팀에서 선박, 항공 금융일을 맡게 됐을 뿐입니다"

이런 "싱거운 동기"는 아마도 그가 수재라는 사실과 관계가 깊을듯 하다.

그는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곧바로 사시에 합격, 좋은 연수
성적을 받아 김&장에 스카우트됐다.

그후 미국 콜롬비아대학 로스쿨에서 금융.증권공부를 했고 밀뱅크트위드
하들리&맥클로이 등 뉴욕의 법률사무소에서 1년간 근무하면서 국제경험을
쌓았다.

그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셈이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온 방안을 뒤덮고 있는 영어책에 압도당한다.

제목만 봐도 기가 질릴 "<><><> financing" 등의 전문서적 일색이다.

한글로 된 책이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두꺼운 전문서적 틈새로 소설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Jurassic Park(쥐라기 공원)"

그러나 역시 영어로 된 원서였다.

"출장갈때 비행기안에서 심심풀이로 읽던 책"이란다.

이 정도면 보통 영어실력이 아니다.

일어에도 능통하다.

밤새기를 밥먹듯하는 변호사 일과속에서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외국어를
2개씩이나 하는걸 보면 남다른 비결이 있을텐데...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예의 "그냥 하다보니..."라는 답을 내놓는다.

물론 정말로 "그냥 하다보니" 된것은 아니다.

항공기와 선박은 수억달러짜리다.

단지 이런 엄청난 액수의 거래를 효율적으로 성사시키는 일만이 허 변호사
가 하는 전부도 아니다.

항공기나 선박은 늘 대형사고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언제 어떤 위험에 맞닥뜨릴지 모른다.

따라서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분쟁의 소지가 없도록 계약서를 만들어야
한다.

금융, 보험, 무역, 각종 소송과 관련된 국제적인 법체계를 확실히 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일은 "그냥" 되는게 아니다.

철저한 프로정신, 땀나는 노력이 없으면 안되는 일이다.

단지 허 변호사에게는 그런 성실함과 노력이 오랫동안 몸에 배어 당연한게
돼버렸을 뿐이 아닐까.

"외국인 변호사들은 세분화, 전문화돼 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는 법논리뿐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까지 제시해 주는 수준이지요. 국내 금융변호사들도
그 수준까지 전문화돼야 합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슈퍼프로 변호사"를 향해 "당연한 듯" 서류와
책속으로 다시 파묻혔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
(산업1부) 김문권 류성 이심기(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