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 자유기업센터 소장 >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의 도입 여부가 주요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상법개정안에 따라 발행주식총수의 3%이상을 가진 주주는 주총에서
이사를 뽑을 때,집중투표제를 채택할 것을 청구할 수 있으며, 청구시 회사는
지체없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 많은 상장사들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규정을
신설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규정을 담기 위해서는 주총의 특별결의가
필요하다.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이상의 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얻을 수
있어야 정관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장회사들은 아주 난감해
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지배주주의 전횡이나 독주를 방지해야 한다는
정책목표가 숨어 있다.

하지만 최근에 경영투명성 강화나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서 이루어진
제도개혁 가운데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특히 집중투표제와 같은 규정들은 정책당국자들이 경영투명성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그 부작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의 소유분산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얼마전까지 대기업 정책의 목표는 소유분산 우량기업 육성과 업종전문화
정책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지배주주의 소유지분을 적극적으로 낮추는 기업을 우대
하고 이 방향으로 정책을 펴왔다.

정권이 바뀌자 정책목표가 크게 방향 수정을 하게 된다.

정부정책에 발맞추어 소유 지분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던 기업일수록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의 웬만한 우량상장기업들의 주식 가운데 외자계 자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아주 높다.

외국 자본의 비주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도 흔하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이사회에 외국금융자본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사들이
선임되게 될 것이다.

회사를 창업하여 발전시키는 경영자의 의사결정과 뮤추얼펀드와 같은 금융
자본의 이익이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아주 높다.

경영자는 기업의 성장과 같이 장기 이윤의 극대화전략을 택하는 경향이
높다.

이에 반해 금융자본은 투자한 자본에 대한 단기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경영자와 이사진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집중투표제는 경영투명성이란 근사한 목표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시간을
두고 큰 비용을 지불하게 할 것이다.

이사회에 다양한 인사들이 포함됨으로 인하여 의사결정이 지체되고, 대형
신규투자가 부결되고, 궁극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성장 환력이 상실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책입안가와 경제정의파 인사들의 바램과 달리 집중투표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것이다.

이웃 일본이 자본자유화의 와중에서도 외국자본의 경영권 참여에 대해서
대단히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배경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성격이 다른 자본들이 경영권에 간섭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만큼 이익을 되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친구따라 강남가는 식으로 익서 저것 생각하지 않고 정책을 펴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딱한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경영투명성의 강화라는 시대 조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된 이사회가
정치화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사회에서 민주주의 원리의 실천이 경영민주화라고 믿는 사람들은 경영권
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집중투표제의 뿌리인 미국의 누적투표제가 거의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점이나 이웃 일본의 실상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집중투표제 배제조항을 신설하는 기업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명분주의자, 도덕주의자, 그리고 이상주의자들의 노고에 힘입어 집중투표제
는 "외자계가 타고 들어온 목마"가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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