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작가 델마 톰슨이 전쟁중에 군인인 남편을 따라 멕시코 인디언이
사는 사막에서 생활했을 때의 이야기다.

심한 모래바람과 40도가 넘는 무더위.

말이 통하지 않아 견디다 못한 그녀는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이혼을 해서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받아 본 아버지는 단 두줄의 회답을 딸에게 보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흙탕물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아버지의 편지는 딸을 감동시켜 어려운 생활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고 훗날
작가가 되는 주춧돌 역할을 해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소재로 "빛나는 성벽"이란 소설을 써서 유명작가가 되었다.

유명작가가 된 후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자신이 만든 감옥의 창을 통해서
별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요즘 자주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을 볼때마다 델마 톰슨 아버지의 편지를
생각하게 된다.

범죄를 저지른 그들에게도 따뜻한 아버지의 편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들은 끝내 흙탕물밖에 보지 못했을까.

어떤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돈이 원수지"란 말처럼 범죄와 돈이 원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사람이라면 환경을 지배하는 것도 사람이다.

"돈 때문에"가 아니라 "돈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한다면 돈에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들의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노린 아버지, 자기의 다리를 절단하는
사람이나 남의 묘를 파헤쳐 돈을 노리는 사람들.

그들은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저럴 수가 있을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죽했으면..."하는 사람
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간에 그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남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때 자기의 생명도 소중한 것이며 돈도 노력
해서 벌때 돈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일을 그들은 몰랐단 말인가.

대문 앞에 입춘대길이라 써놓고 봄을 맞던 옛 사람들의 아름답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고 누웠으니 장부의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다던
옛 사람들의 욕심없고 청빈하던 마음은 누가 다 빼앗아 간 것일까.

요즘 우리들의 마음속엔 삭풍이 불고 있다.

봄이 와도 맞이할줄 모르고 꽃이 피어도 꽃처럼 활짝 웃지 않는다.

생활이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 것일까.

꽃보기 보다는 돈보기를, 내면보다는 외모를 더 중시한다.

온갖 돌풍에 휘말렸던 지난 겨울은 따뜻하지 못했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살기가 더 힘들어 나쁜 사건은 더 많이 일어났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경제가 나아진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들이 태산같다

그래선지 봄이 더 기다려진다.

꽃이라도 보면 찡그린 얼굴에 미소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다.

올 봄에는 꽃처럼 활짝 피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꽃도 죽은 듯한 겨울 나무에서 피어난다.

꽃처럼 우리도,우리의 삶도 겨울나무에서 봄나무로 피어날 순 없을까
봄에게 물어본다.

"잎새는 뿌리의 어둠을 벗어나려 하고/뿌리는 잎새의 태양을 벗어나려 한다
/나무는 나무를 벗어나려는 힘으로/비로소 한 그루/아람드리 나무가 된다"

유하 시인의 "나무"란 시다.

이 시처럼 우리도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면 싶다.

남쪽에선 벌써 꽃소식이 만발하고 개구리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버들치도 산천어도 맑은 물을 찾고 보리들도 언 땅을 뚫고 새파랗게
올라왔다.

아지랑이도 아른거릴 것이다.

볼 것이 많아 많이 보라고 봄이라는데 올 봄엔 무엇을 많이 볼 수 있을까.

꽃보다는 꽃 같은 세상을 제일 먼저 보고 싶다.

실업말고 실업을, 고함보다 고매함을, 도둑질보다는 도덕률을, 욕보다는
칭찬을, 박해보다는 박수를, 흉보다는 용서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하나 발견하고 싶다.

그 아름다움이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희망은 욕망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서울의 봄이 웃음꽃을 피울 날은 언제일까.

봄이 오는 길목에서 기다려 본다.

아버지의 편지 같은 따뜻한 봄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3일자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