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육식동물 가운데 호랑이 만큼이나 신방 차리는 과정이 잔악한
동물은 없다.

발정기에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암컷을 순식간에 황천에 보내는 것으로
색정을 삭이는 습성을 갖고 있는 짐승이 바로 수컷 호랑이다.

호랑이 암컷들은 생후 4~5년이 지나면 성숙한다.

발정기는 1월말부터 2월초순까지로 이때가 되면 신랑감을 유혹하기 위해
이른 새벽과 황혼녘에 산천이 떠나갈듯이 "어흥, 어흥" 울어댄다.

동시에 사방에다 방뇨해 자기 위치를 알린다.

단독생활만 하는 신랑감들은 장가들 욕심에 정신없이 모여들어 신부감이
관전하는 가운데 생사의 왕위전을 벌인다.

만일 신부가 발정의 최적기가 아닐 경우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춘다.

신랑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초혼의 죽음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정의 최적기에만 신랑을 찾아들게 해 신방을 차리는 것이 호랑이
의 유일한 자연번식 방법이다.

그러나 자연생태가 아닌 동물원 우리안에서 사육중인 암수 호랑이를 합방
시키는 과정에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합사후 신부가 원인모를 앙탈이나 거부를 시도할 경우 교상사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고에 대비,보통 합방시키기 전에는 가스총이나 마취총 연막탄
소방호수 산토끼와 닭 등을 준비한 후 암컷이 발정의 최적기가 된날 아침에
합사시켜야 한다.

창경원시절 필자가 겪은 일화 한가지를 소개한다.

64년 3월7일 아침 긴장과 초조속에 암수 호랑이의 합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간에 얼굴을 맞댄후 수컷이 코를 암컷 엉덩이에 대는 순간 암컷은
꼬리를 접어넣고 발랑누워 앙칼질 발톱으로 수컷의 얼굴을 핥켜 재쳤다.

순간 수컷은 "어흥" 소리와 함께 암컷의 목덜미를 물고 살기섞인 눈으로
암컷을 질질 끌고 다녔다.

단 1초도 못되는 순간 만사는 끝나고 암컷은 단한번의 반항도 못한채
축느러져 죽어버렸다.

암컷은 신방을 거역한 죄로 처절한 죽음을 당한 셈인데 "달라고 할때
순순히 주는 것"이 상책인 것을 미쳐 알지 못하고 간 암호랑이가 가엽기
그지 없었다.

74년 3월6일 경험을 살려 만반의 준비를 끝낸 후 호랑이 암수를 합사
시켰으나 1주일후 새벽녘 원인모를 교살로 또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후 필자는 선진국 동물원을 둘러본 결과 호랑이 합사성공률이 50%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결국 호랑이의 습성을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수컷 호랑이를 능숙능란하게
다룰수 있는 연상의 신부감만이 교살의 운명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얻어
냈다.

그리고 얼마후 광주 사직동물원에서 암컷 호랑이와 연하의 수컷 호랑이를
합사시켜 번식에 성공했다.

필자는 이같은 결과를 기초로 호랑이의 신방차림과 인공번식에 대한 성공담
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전세계 동물원에서는 연상의 호랑이 암컷을 이용한 합사
번식시도로 자연에 서식하는 호랑이를 생포하지 않아도 동물원에서 번식된
호랑이만으로 전시가 충분하게 됐다.

호랑이 합사후 교상사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일익을 한 것이
동물원 근무 40년의 크나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 서울대 수의학과 초빙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