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들은 옛 문화의 역사를 그 문화가 지닌 도자기에서 찾는다.

도자기 편린을 통해 당시의 사회적 관습, 기술 수준, 교역로까지 더듬어
낸다.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가야시대부터 섭씨
1천2백도의 고온에서 구워낸 전단계의 경질토기들이 나왔다.

그 뒤 9세기말께부터는 중국 월주청자의 영향을 받아 청자를 구워냈다.

전남 강진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려의 비취색 청자명품들이
만들어진 것은 청자의 절정기였던 12세기 전기였다.

청자가 왕실이나 귀족의 세련된 미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청자가 쇠퇴하고 서민풍의 분청사기와 백자가 전성기를 맞는다.

성종~중종 연간에는 경기도 광주지방에 사옹원의 분원을 두어 이 일대가
조선조 백자제조의 중심지가 됐다.

왕실에서 전용하는 분원의 관요에서 구어낸 백자는 질 형태 색깔이 우수한
명품들이었다.

한일 합방을 전후해 일본인들은 청자나 백자에 눈독을 들여 모조리
사들였다.

호리꾼(도굴꾼)들은 고려청자를 "왕서방", 조선백자를 "이서방"으로 부르며
전국의 고분을 샅샅히 뒤져 도굴해 갔다.

이들에 의해 명품다운 명품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임진왜란때 수백명의 도공들이 끌려가 일궈낸 일본도자기는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다.

그중 명품중 명품이라는 아리타 도자기는 임란때 끌려간 한국인 이참평이
전해준 조선백자기법을 이어받은 것이다.

오는 2001년 개최될 "세계도자기 엑스포"의 행사장소가 이천 설봉공원,
광주 여주 일원으로 확정됐다.

이 일대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의 하나인 전통도자기의 명품 산실이었고
지금도 1천여개의 전국 도자기 생산공장중 90%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또 매년 도자기축제를 열어 성공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전준비에 만전을 기해 성공적인 국제행사가 되어 관광진흥에도 한몫 하고
한국도자기 업계의 영세성을 벗어버리는 전환점리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세계도자비엔날레" 개최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