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는 민주주의나 경제발전과 병용될 수 있다" "역사의
종언"이란 저서로 유명한 프란시스 후쿠야마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이날 "가치, 통치구조와 발전"을 주제로 열린 제1학술토론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위기의 주범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기업지배구조와 경제발전"을 주제로 열린 제2학술토론에서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이 환란의 상처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선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열린 토론에는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 밍신
페이 프린스턴대 교수, 유종근 대통령 경제고문(제1학술토론회)과
개발독재모델 비판론자인 윌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 인도네시아 기업개혁
운동을 이끌어온 여걸인 마리 팡게트투 CSIS연구원장(제2학술토론회)등
전문가들이 참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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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 통치구조와 발전 ]

프랜시스 후쿠야마 < 조지메이슨대 교수 >

"아시아적 가치"는 동아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제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90년대 초만해도 아시아적 가치는 이 지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위기 이후 근본적 원인이 아시아적 가치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를 이제는 "죽은 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위기를 아시아적 가치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설득력이
약하다.

이런 사건은 경제적 제도적 분석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시아의 문화적 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은 독특한
제도와 관행들도 점점 서구의 시스템과 유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생활은 더 개방적이 될 것이고 시장이 주도할 것이다.

통치체제는 민주적으로,사회구조는 서구의 탈산업사회를 닮아 갈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아시아의 예외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이 세가지 영역에서
서구와 아시아의 동질화 추세를 가속화할 것이다.

아시아 위기를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데 따르면 정경유착이 관행화된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위기의 주범이다.

그러나 부패의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며 일반화하기 어렵다.

국제투명성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홍콩의 부패지수는 서구
몇몇 나라보다 오히려 낮다.

문제는 부패한 거래를 조장하는 문화적 성향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정부패를 막는데 도움이 되는 제도적 견제장치의 부재였다.

아시아적 가치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주장은 두가지 점에서 취약하다.

첫째 아시아는 광대한 지역이며 나라마다 가치관에 차이가 있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도 유교는 서로 상이하게 해석되고 있다.

둘째 가치관이 행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통해 행동화된다.

아시아적 가치는 서구의 문화와 그렇게 이질적이지 않다.

아시아적 가치는 경제적 근대화를 쉽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민주주의를
배양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시아의 문화적 시스템에 의해 영향을 받은
독특한 제도와 관행들도 점점 서구의 시스템과 유사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을 둔 경제시스템이 더 좋다는
논리로 정권을 유지해온 이 지역 독재정권의 정치적 정통성을 약화시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사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던 한국은 그 정치적
제도의 근본적인 정통성에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적 제도는 다양한 이익집단으로 하여금 그들의 의견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민주적 포럼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국가적 능력을 구축하고 보다 근대적인 규제
시스템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반면 일본과 한국은 국가제도의 일부를 해체하고 자유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들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점을 갖고 있다.

다른 아시아인들보다 사회적 질서를 존중하는 정도가 낮다.

사회적 정치적 투쟁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의 이익집단들은 권위에 도전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이런 점들은 강력한 노조 혹은 학생운동에 반영돼 있다.

독재적인 정치시스템 아래서는 이같은 요소가 불안정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의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민주적인
정치적 매커니즘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한국의 정치는 보다 유럽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

한국사회에서 미래의 사회적 불안정은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에서 파생될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범죄와 폭력의 주범들이 젊고 미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사회는 앞으로 15~20년 사이에 대단히 불안정해질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