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됐다. IMF체제로 대변되는 우리경제는 지난
1년동안 외형적으로 급박한 외환위기 상황은 일단 벗어났고 어느정도 거시
경제지표들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24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 스스로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됐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경제운용 측면에서 본다면 외환위기를 맞았던 지난 97년말 39억달러에 불과
했던 가용외환보유고가 지금은 5백억달러이상으로 늘어났고 환란 직후 연
30%에 달했던 금리는 한자릿수 이내로 내려왔다. 또 지난해 경상수지흑자는
3백99억달러로 사상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외국인투자 증가 등으로 원화강세를
걱정해야 할만큼 환율도 안정됐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때 지난 1년의 경제운용성과는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올들어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일제히 우리의 국가신용도를 투자
부적격에서 투자적격으로 상향조정한 것은 그같은 경제운용 성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경제가 이제는 안심해도 좋을 만큼 안정을 되찾았는가에
대해 냉철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김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최우선과제
로 지적했듯이 2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 문제는 경제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
로 남아있다. 제조업가동률은 아직도 겨우 70%수준에 머물러 있고, 기업의
설비투자는 좀체로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수 있을 만큼 지극히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해야
한다. 더구나 세계금융불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미국 등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추세도 강화되고 있는 형국이어서 앞으로의 경제운용은 더욱
정교한 정책과효율적인 수단의 강구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제 2년째로 접어드는 국민의 정부가 풀어가야할 과제는 많다. 우선
그동안 추진해온 경제 각 부문의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내실화를 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그동안 금융및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은 비교적 강도높게 추진돼왔다고 본다. 5개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 종합금융사 등 60여개의 금융기관이 퇴출됐고 수많은 기업이 정리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그같은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통폐합을
이룬 은행들이 정상화되기 까지는 몇년이 더 걸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기업구조조정 역시 설비적정화와 핵심역량의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멀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이와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구조조정의 추진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누차 강조한바 있지만 우격다짐식의 부실기업정리나
빅딜 등은 더 큰 부작용을 수반할 우려가 있다. 정부가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는 시장경제기능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정책의 신뢰와 효율성제고를 위해 필수적이다. 사실 경제의 활력
을 찾아가는 주체는 기업이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기업의 창의와
의욕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정부가 내세운 4대 개혁과제중 다소 미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공공부문과 노동부문의 개혁은 지금부터가 문제라고 본다.
특히 현안으로 떠오른 노사문제는 경제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실업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노동계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려나가는 일인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노동정책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세워 흔들림없이 추진해나가면서 노사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정부개혁도 그런 점에서 철저한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실시해온 경영진단결과를 토대로 내달말까지 대폭적인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조직개편은
결코 조직을 줄이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세계화 개방화시대에 맞는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공기업의 경영혁신과
민영화 등은 더 이상 미뤄지면 과거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영원한 숙제로
넘겨질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경제자체의 효율성제고만으로
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정치와 사회안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우리 경제가
정치논리에 휘둘려 비능률이 초래됐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솔직히 앞으로의 정치일정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개혁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지도자들의
각성이 절실한 순간이다.

우리는 국민의 정부 1년 성과를 결코 과소 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앞으로
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둔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와
각오가 요구된다.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의 고통분담 의지가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형편이 좋아지면 각계각층의 욕구도 다양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정부
정책도 느슨해지기 쉽다. 인기에 영합하거나 정치적 목적의 전시효과를
겨냥해 정책을 남발하거나 방만한 집행은 특히 금물이다.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은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는 위기극복을 넘어
21세기의 국가발전을 향한 보다 원대한 관점에서 경제를 펴나가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