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간 나오토 대표는 일본의 경제회생을 위해선
종래와 같이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재정투입을 늘리는 식의 처방으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일본판 토니 블레어"로 불리는 간 대표는 "자민당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로나 다리건설 등 인프라 구축은 구태의연한 경기진작책으로 일부 대형
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린다"며 "일반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
공간 향상 프로그램" 등 보다 신선하고 다양한 소비진작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 정치.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책임있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선 관료에 집중돼 있는 권력을 국민들이 뽑아준 정치인들에게로 이동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리=김수찬 기자 ks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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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회생 방안으로 자민당 정부는 금융개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금융개혁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시급히 추진돼야 할 일은 소비능력 확대다.

세금을 줄이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세금 부담을 줄이면 민간소비가 직접적으로 촉진된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국민들은 지방세까지 포함해 소득의 평균 65%를 세금으로 내고
있을 정도로 막대한 세금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개인들의 소득세율과 기업의 법인세율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세부담 경감과 함께 정부는 "생활공간 향상 프로그램" 등 다양한 소비촉진책
을 시행해야 한다.

생활공간을 넓힐 경우 경기진작 효과가 곧바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주택경기가 되살아나면서 경기전반에 플러스 효과를 가져 온다.

또 생활공간이 늘어난 만큼 공간을 채우기 위한 씀씀이도 같이 늘어난다.

생활공간 향상 계획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부가 부실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들 은행에서 매입한
토지를 사무실용 건물이나 기타 다른 용도의 건물을 짓는데 사용하지 말고
주거용 건물 부지로 사용해 생활공간을 넓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 관리들의 주거용으로 지은 관사중 놀리고 있는 것을 민간기업에
팔거나 일반 국민들이 살 수 있도록 아파트로 전환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같은 다양하고 신선한 경기진작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결국 소비자들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소비는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정부가 신선한 방법들을 도외시한 채 과거식 경기진작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리를 새로 건설하거나 도로를 넓히는 등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만을 늘리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민간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기부양책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자민당의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는 촌 구석에 다리를 하나 더 놓고 길을
넓힌다고 해서 경기가 살아날 리 없다.

이는 결국 몇몇 건설회사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경제회생을 위한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압박이 어느정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개입을 내정 간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경기진작책들은 나의 생각과
매우 흡사하다.

물론 자민당 정부내에서도 이같은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농촌지역으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을 극복하지 못해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일본의 정치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는 주요 원인중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농촌에 기반을 둔 현재 일본의 정치적 구도가 바뀌지 않은 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즉 농촌기반에서 도시와 소비자에 기반을 둔 정치적 구도로의 변화가 시급
하다는 얘기다.

현재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농촌이나 몇몇 대형 건설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다.

소비자와 납세자 즉 전체 국민의 뜻을 담아낼 수 있는 정당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치력을 발휘하고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정치인이지 대형건설업체와 결탁을
맺고 있는 관료들이 아니라 점이다.

최근 한번쯤 일본을 방문해본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일본 국민들이 지금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국민들중 상당수는 왜 일본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 의아해하고
있을 정도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일본이 중국과 인도네시아와 달리 급격한 변화를
거부하는 노령화 사회로 이미 접어들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일본 경제는 제자리 걸음을 했다.

90년부터 성장이 멈춰진 상태다.

세수는 늘지 않고 있는데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다.

앞으로도 노령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지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재의 흐름이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경우 경제활동인구가 벌어들인 소득의
40%가 노령인구를 먹여 살리는데 쓰일 것이다.

이같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선 일본경제는 매년 3%의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지금까지 관이 주도했던 경제개발 정책은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

특히 경직된 관료조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정보화 글로벌화 경제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암스테르담 대학의 카렐 반 볼페른 교수가 "일본 경제기적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일본 관료들의 지나친 파워와 정치인들의 책임의식 결여를 지적한데
동감한다.

이런 요소들이 일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일본 정책의 80%는 관료들에 의해 결정된다.

나머지 20%만이 국민들이 뽑은 정치인들의 몫이다.

어떻게 내각이 책임있는 정치를 펼 수 있겠는가.

후생상 시절 참석했던 회의중 가장 길었던 회의가 고작 15분이었다.

관료들이 모든 것을 결정해 놓은 상태에서 각료는 그냥 들러리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이 잘못됐을 때 과연 누가 책임을 지려 하겠는가.

일본의 정부 시스템을 영국식으로 바꿔야 한다.

영국에서는 장관 1명에 최소한 5명의 주니어 장관이 보좌하고 있다.

또 집권당 의원중 1백여명 이상이 내각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장관만 덜렁 내각에 참여한다.

이를 보좌할 인력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장관은 관료들에 둘러싸인 "인질"이 될 수 밖에 없다.

총리는 물론 장관이라는 직책도 최종적으로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책임있는 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의 경제는 물론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선 관료에
집중된 권력을 국민들이 뽑아준 정치인에게로 돌려야 한다.

< LA타임스신디케이트=본사 독점전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