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만화영화업체인 한신코퍼레이션은 창작 애니메이션 개발에 사력을
쏟고 있다.

"예수" "율리시즈" 등 극장용 만화영화를 만들었는가 하면 TV만화영화인
"꼬비꼬비" "올란도영웅전" 등을 제작, 해외시장에 내다 팔았다.

올해는 바닷속 용궁을 소재로 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준비중이다.

만화영화업체가 창작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내 업계에서는 "무모한 짓"
으로 치부된다.

돈을 벌기는 커녕 제작비도 못건지고 낭패를 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신이 창작 애니메이션을 하는 것도 당장 큰 돈이 벌려서는 아니다.

장삿속으로만 따지면 미국이나 일본의 하청작업을 하는게 속도 편하고
이윤도 많이 남는다.

새 작품도 내심으론 제작비나 회수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러면서도 한신이 창작에서 손을 떼지않는 것은 지금부터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긴 안목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하청물량에 의존한다면 한국 만화영화산업은 차치하고 회사의
존립조차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신묵 한신 사장은 "하청작업은 부가가치가 낮은데다 비수기와 성수기가
뚜렷이 구별되는 등 인력운영에도 문제가 많다"면서 "창작을 해야 국내
애니매이션산업의 발전은 물론 신규인력의 창출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불안정한 인력시장 =국내에는 약 1백50개사에서 1만여명의 애니매이션
종사인력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사슬처럼 얽힌 재하청 구조와 계절적인 수요급변으로 애니매이터들의
이직률이 높은 등 인력시장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애니메이션은 한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만장의 그림을 일일이 손으로
그려내야 하는 "수공업적" 산업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수백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가
작업이 끝나면 철새처럼 흩어지는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계절적인 호.불황이 생기는 이유는 미국 방송사들의 편성정책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ABC CBS 폭스 등 미국 TV방송사들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매년 9월부터
"새터데이 모닝쇼"라는 이름으로 1시간 가량 만화영화를 집중 방영한다.

한국 업계도 덩달아 대목을 맞아 정신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주문량을 납품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일감이 없어 두손을 놀리게
된다.

한신이 창작물 제작에 나선 것도 바로 비수기라도 일을 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정 때문이 크다.

수출선을 미국과 일본이 아닌 유럽쪽으로 전환한 것도 바로 수출선 다변화로
일감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부 대형 업체가 해외 거래선을 독식하고 중소업체들이 이를 재하청받는
방식도 문제다.

다단계 하청과정을 통해 낮은 인건비를 최대한 더 짜내는 불합리한 생산
방식도 결국은 OEM에 그 원인이 있다.

OEM은 또 국내 애니매이션업계에 기획 등 크리에이티브가 요구되는 프리
프로덕션 인력은 작고 원화 동화 채색 편집 촬영 등 제작인력만 과잉되는
기형적인 인력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한국 애니매이션업계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앞서 기존 인력시장의 합리적
개편이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TV방송과의 협력이 시급하다 =국내 애니매이션업계가 쉽사리 창작에
나서지 못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영화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

보통 13부작 또는 26부작으로 만들어지는 TV용은 30분물 1편당 최소
7천만원, 극장용도 20억원은 들여야 한다.

영세한 만화영화업체로서는 선뜻 나서기가 버겁다.

극장용은 작품이 완성돼도 배급과정에서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상영관을 잡기가 힘들다.

국내 만화캐릭터중 가장 인기있다는 "둘리"로 만화영화를 만들었던 김수정씨
도 일반 극장을 잡지못해 체육관과 어린이회관 시민회관 등을 전전해야 했다.

TV용도 마찬가지다.

일단 방송사가 방영을 해줘야 시청자와 만날 수 있다.

애니매이션과 TV방송이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막대한 제작비
마련에도 있다.

선진국에서도 만화영화는 TV방송사가 공동 제작파트너가 되어 만들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방송영상산업진흥대책은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공영방송 기준 국산만화영화 의무편성비율을 98년의 25%에서 점차 늘려
2001년엔 50%로 확대하고, 4백억원 규모의 공익자금을 조성해 국산만화영화의
창작을 지원하는게 골자다.

지원책을 바라본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책대로라면 국산만화영화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환영론과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는 회의론이 분분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산 만화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여전하고 일부 방송사의
경우 컴퓨터그래픽을 쓴 작품은 무조건 만화영화로 분류하는 등 횡포가 여전
하다"고 지적했다.

의무상영비율을 안지킬 때에도 벌금이 3백만원에 불과해 페널티를 내고
말겠다는 방송사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방송사들이 벌금을 내고서라도 외국 만화영화를 방영하겠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 30분짜리 국산만화영화 1편을 제작 방영하기 위해서 방송사들이 투자
하는 비용은 3천5백만원선, 여기서 녹음료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2천만~
3천만원가량이 들어간다.

그러나 일본 만화영화를 살 경우엔 거의 공짜로 심지어는 협찬금까지
받아가며 방영할 수 있다.

일본업체들이 자사의 완구를 판매하기 위해 만화영화를 저가에 공급하기
때문이다.

유통구조 개선, 제작기금 조성, 전문인력 양성 등 애니매이션 활성화를
위해 난제들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풀어내는 핵심은 TV와의 긴밀한 협조체제에 있다는게
업계의 한 목소리이다.

< 정리= 이영훈 기자 br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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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주신분 = 김석기 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장,
최신묵 한신코퍼레이션 사장,
김혁 B29 대표,
안상혁 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
황선길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주임교수,
이희석 애니마떼끄 대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