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광역분쟁의 씨앗이 된 르완다내분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반목에서
비롯됐다.

유목민 출신으로 체격이 큰 소수민족 투치족과 농경민으로 체구가 작은
다수민족 후투족은 그러나 벨기에의 식민통치 전엔 각기 역할을 분담하는 등
공동통치체제를 유지했다.

싸움은 당초 투치족 편이던 벨기에가 60년대초 후투족을 지원, 독립 르완다
의 주도권을 후투족이 장악함으로써 급기야 투치족에 대한 인종청소라는
참극으로 비화됐다.

근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코소보내전은 89년 알바니아계로
이뤄진 코소보에 대한 유고정부의 자치권 박탈에서 시작됐다.

민족및 종교 분쟁의 끔찍함은 공격의 대상이 군인에 한정되지 않고 민간인과
부녀자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 싸움의 정도를 훨씬 능가한다.

새뮤얼 헌팅턴은 일찍이 냉전종식후 문명충돌로 인한 대립이 심화되리라고
예고했거니와 실제로 오늘날 지구촌 곳곳의 피비린내 나는 민족과 종교 문명
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야기되고 있다.

압둘라 오잘란의 체포를 계기로 세계 각지에서 격화되고 있는 쿠르드족의
항의 또한 이같은 민족분쟁의 하나다.

쿠르드족은 독자언어를 쓰면서도 4천년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살아왔다.

특히 터키에선 1천만명이상 살면서도 공식석상에서의 언어사용을 금지당하는
등 소수민족으로서의 최소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잘란은 터키정부에 자치권과 언어사용을 허용해주면 투쟁을 그만두겠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다.

오잘란 체포에 강대국이 협조했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쿠르드족의 시위는 단순히 오잘란의 체포에 대한 항의라기보다 나라를 갖지
못한 소수민족의 설움과 분노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오잘란의 테러행위야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더부살이민족의 피맺힌 항의는
함부로 나무라기 어렵다.

쿠르드족의 분신을 보며 문득 만해 한용은의 "당신을 보았습니다"가
떠오르는 건 바로 그런 까닭이다.

(전략) "민적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
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후략)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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