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개혁이 미흡하고 모피아(MOFIA.재무부의 영문표기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전직 재무부 관료를 지칭)를 해체하지 못한게 최대의
실수였다"

국민의 정부 1년동안의 경제정책에 대한 학계의 첫 평가는 이렇게 나왔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이사장.변형윤 제2건국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주최로
5일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에서 열린 "IMF 관리후 1년간의 경제정책
평가와 과제"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지적된 얘기다.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지난 1년간 김대중
정부의 최대 실수는 "모피아" 조직을 해체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엔 비수를 대면서 공공부문 개혁엔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며 다른 부문의 개혁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문이
직무를 유기한 조치라고 혹평했다.

김기원 한국방송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구조조정의 메스가 대기업 총수의
독재란 개혁의 본질은 피한채 기업구조 재편에만 방향을 맞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행사엔 변 위원장을 비롯 정운찬 서울대 교수, 장현준 에너지경제
연구원장,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경제정책(안국신 중앙대 교수) =국민정부는 한국경제의 파탄을 초래한
원인이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정부패 도덕적해이 등이란 사실은 제대로 간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주범인 정치와 정부부문을 과감하게 개혁해야만 했다.

공공개혁이 기업 금융 노동개혁을 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러나 공공부문 개혁에 대해선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기업부문엔 촉박한 시한을 주고 구조조정을 다그친 반면 공공부문에 대해선
중기적인 계획을 세워 느긋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부문의 개혁을 선도해야 할 정부부문이 직무를 유기한 대목이다.

특히 경제관료에 대한 인사 실패는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결정적인 악수였다.

모피아를 경제부처 요직에 배치한 것은 실착이었다.

모피아는 관치금융과 금융부실, 도덕적 해이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낳은 온상이다.

동시에 정경유착의 중개인 내지 시녀이다.

외환위기 주범이자 관료주의 표상이다.

이런 모피아를 재정경제부에 배치하고 선거직에까지 내세운 정부 인사정책
은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의를 무색케 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는 조치였다.

정부부문과 모피아의 혁파없이 제2의 건국을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현 정부의 재벌정책은 "빅딜"을 빼면 대체로 훌륭하다.

수많은 정책수단 중의 하나인 빅딜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빅딜이 재벌
개혁의 본질인 것처럼 전면에 부각돼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개혁에 정치논리가 개입될 경우 개혁이 안되고 구조가 왜곡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경제를 잘아는 대통령이라면 이런 교훈을 거울삼아 경제를 정치논리로
풀어가고자 하는 유혹을 극복해 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대 정부 못지 않게 경제를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통제하는 모습은 또 있었다.

은행에 대해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춰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종용했다.

은행은 억지춘향 역할을 할수밖에 없었다.

기존 관치금융을 능가하는 "신관치금융"이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이제 더 이상 신탁원리금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선언
하고난 후 한남투자신탁 앞에선 말을 뒤집었다.

정리해고제를 법으로 허용해 놓고도 경영권 차원에서 정리해고를 추진
하려는 재벌에게 노동계의 반발과 사회불안을 이유로 제동을 걸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수 있다.

국민의 정부는 대처리즘과는 거리가 먼 대중영합주의(populism)의 정치논리
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 금융구조조정(김상조 한성대 교수) =금감위의 부실기업 처리과정엔
무리가 뒤따랐다.

특히 기준의 객관성과 절차의 투명성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
시켰다.

97년말 기준 BIS 비율이 8% 미만인 12개 은행의 경우 6대 회계법인 실사
결과와 경영평가위원회의 BIS 비율 계산에 차이가 났다는게 대표적인 사례다.

비은행금융기관의 경우 지배적 대주주가 누구냐에 따라 부실금융기관
처리의 형평성이 훼손된 경우도 있었다.

이같은 문제점은 결국 정책당국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

나아가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 구조조정 비용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금융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문제도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금융 구조조정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64조원의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 계획엔 제일.서울은행의 해외매각 계약조건에 따라 일정기간 추가로
발생하는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부담 등이 반영돼 있지 않다.

퇴출금융기관의 예금 대지급분과 인수금융기관의 손실보전분은 사실상
회수가 거의 불가능한 돈이다.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되는 공적자금의 상당부분은 결국 국민의 조세
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 기업구조조정(김기원 한국방송대 교수) =IMF사태 이후 IMF및 IBRD나
시민.노동 단체는 물론 재벌측조차도 재벌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시인하지
않을 수없게 됐다.

그런 가운데 과잉투자 해소, 부당내부거래 제제, 결합재무제표 도입,
부채비율 축소 등을 통해 재벌 구조조정이 부분적으로 진전됐다.

정부는 그러나 총수의 왕조적 독재란 재벌의 본질적인 문제는 회피하고
파생적인 문제에 역점을 뒀다.

심지어 재벌개혁에 역행하는 조치를 내놓기까지 했다.

순수지주회사를 허용하고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재벌의 구조조정이 개혁보다는 재편에 치우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빅딜은 어쨌든 성사될 것 같지만 그것이 경제적 합리성을 가질지는 의문
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총수의 책임도 제대로 묻지 않은채 국민부담하에
부채를 탕감해 줄 공산이 크다.

부채의 출자전환을 통한 소유-지배구조의 혁파로 재벌체제의 대내적 개혁
뿐만 아니라 대외적 개혁과 과잉축적 해소를 훨씬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데도 이에 착수하지 못함으로써 재벌 구조조정은 어정쩡하게 끝날
것으로 우려된다.

<> 노동정책(김형기 경북대 교수) =김대중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상대적으로 친노동자적 입장을 가지고 IMF 관리체제
아래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에 힘쓰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아래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정리해고제를 강제하고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민정부의 개혁정책은 자기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금융자본 주도와 시장주도의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면서 노사정 사회적
합의와 노사협력을 유도하려는 점이 그렇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일방적 구조조정과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통한 구조조정
이 상충하고 있다.

< 정리=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