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장 >


며칠전 한 종합병원의 산부인과를 찾았다.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암검사차 들르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종합병원에 가 진찰권을 끊고 접수를 한후 이름이 불려질 때까지
하염없이 앉아있는 것이 퍽 한적하고 쾌적하기까지 했다.

하던 일을 다잊고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사연들을
읽는 것은 즐거운 외도였다.

2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만이 모이는 과가 산부인과라 생각하니
그것도 새삼스러웠고 세상에 여성만 허용되는 공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마치 소리가 차단된 유리벽 저편에서 펼쳐지는 여자의 일생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 열심히 그 광경에 몰두했다.

젊고 배부른 여성들이 비슷한 몸매들을 자랑하며 촘촘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명의 탄생이란 진지함의 일상성이 이보다 더 잘 드러날 수는 없었다.

이어 나의 시선은 폐경기에 접어든 중년여성들의 모습에 머물렀다.

곧 다가올 내모습을 익히기위해 정겹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시선은 한노인의 얼굴에 꽃혔다.

가슴이 무엇으로 꽉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목소리가 가슴저편에 짓눌린다.

시간의 공격을 무참히 받은 패기처분직전의 그 얼굴, 누구든 끝내 가지게
될 그 얼굴을 보며 어느날 나도 저런 얼굴을 가지고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그노인 옆자리에 가서 앉아 보았다.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저 그분의 존재를 느껴보고 싶었다.

의외로 호흡이 잔잔하고 편안했다.

길 떠날 채비를 다마친 사람처럼 조용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느 시인이 읊었던 "아름다운 폐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름다운 폐인"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문득 생각해보았다.

아름다운 폐인, 그나마 한가닥 건강은 지켜야 그것도 가능할 것같아 보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3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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