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스템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균형이나 붕괴로의 수렴없이 만성적
으로 정상 이하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완전, 혹은 거의 완전한 고용이란 매우 드물고 단기적인 현상이란
증거가 있다"

- 케인스 "일반이론" 중에서 -

20세기 전반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혁신적 사상가로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1883년 같은 경제학자였던 존 네빌 케인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케인스는 처음 수학을 배웠다.

그러나 그의 은사이자 당시 영국 경제학의 대부였던 마샬(A Marshall)의
권유에 따라 경제학을 배우게 됐다.

대학 졸업후 케인스는 2년간의 공직생활을 하게 됐다.

이때부터 케인스는 현실의 경제정책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며 그 결과
로서 1913년 처녀작 "인도통화 및 재정"(Indian Currency and Finance)을
출간했다.

이어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의를 하던 케인스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곧 재무부에 들어간뒤 종전후 베르사유 평화조약에 영국의 재무부 대표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 조약이 독일을 파멸시킬 만큼 지나친 전쟁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비판하고 대표직을 사임했다.

1919년 이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의 경제적 영향"(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이란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이 케인스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평화의 경제적 영향이 현실의 정치경제정책에 대한 대안가로서 케인스의
명성을 높였다면 경제이론가로서 케인스를 저명하게 만든 것은 1923년 출간된
"화폐개혁론"(Tract on Monetary Reform), 1930년 출간된 "화폐론"(Treatise
on Money), 그리고 1936년 완성된 "일반이론"(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등 3권의 책이다.

특히 일반이론은 케인스 자신의 이전 저작들은 물론 이른바 고전파 경제학
이라 불리는 기존 이론틀을 벗어나는 혁명적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출간으로 현대 화폐금융론과 거시경제학의 기초가 정립되었고 이는
이후 수십년간 경제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유행하게 됐기 때문이다.

일반이론의 핵심은 국민경제가 항상 완전고용상태에 머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속적인 비자발적 실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당시의 주요경제문제로
떠올랐던 만성적 실업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의 자동적인
균형회복기능을 강조하는 고전파 경제학이 만족스러운 원인규명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시작됐다.

고전파경제학 체계를 비판 극복하는 케인스이론을 기리기 위해 이른바
케인스혁명이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실상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 보면 종종 파라다임 변화에 대해 혁명이라는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데,1870년대의 근대경제학성립을
한계혁명이라 칭하는 것은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혁명이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으로 대공황이래의
실업이 소멸되고 케인스의 이론적 결론이 입증되는 상황하에서 "케인스혁명"
(Keynesian Revolution)이라는 저서가 1947년 클라인(R Klein)에 의해 출간
되면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인스 이론의 혁명성에 관해서는 일반이론의 해석과
관련해 상당한 논란이 있다.

불완전고용의 존재 및 불균형경제를 분석하려는 케인스의 의도나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케인스 이론의 정책적 합의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이론적 내용에 관해서는 학자들간에 강조점의 큰 차이가
존재해왔으며 이로 인해 여러 학파가 분화됐다.

문우식 <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mwoosik@gias.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