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저녁 빌 클린턴 대통령이 99년 연두교서를 발표한 하원 본회의장
은 미국정치의 일그러진 단면을 연출한 무대였다.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그날은 클린턴의 법률고문들이 같은 의사당 안의 상원
에서 탄핵의 부당성에 대한 변론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피고석에서 재판을 받는 신세인 대통령이 상하양원의원들과 국민을 모아놓고
신년 국정구상을 밝힌다는 것은 모양상 어딘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공화당이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시기를 탄핵재판이후로 늦추자고 주장했던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클린턴이 이를 놓칠리 없었다.

피고석에 앉아 미주알 고주알 변호를 해야 하는 처량한 장면과 비교하면
연두교서 발표장은 별천지다.

상하양원은 물론 지원부대(각 부처장관)까지 동원된 천금같은 변론의
기회다.

물론 클린턴은 탄핵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간간이 사용된 "거당적(bipartisan)"이라는 단어가 이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변호사 출신인 클린턴은 정교한 변론가였다.

지난 1년간의 치욕을 연두교서 하나로 일시에 바꿔놓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시작부터 강하게 나왔다.

미국은 강한 국가가 됐다고 선언했다.

21세기를 내다보는 미국민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미국경제는 전후 최장기 경기팽창을 구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천8백만의
새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임금상승률은 물가상승률의 2배에 달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극빈자 숫자가 가장 적어진 것은 물론 지난 57년 이래 가장
낮은 실업률을 기록중이라고 자랑했다.

92년 2천9백억달러에 이르던 재정적자를 지난해에 7백억달러의 흑자로
돌려놓아 30년만에 처음으로 균형재정을 이룩했다는 대목도 빠뜨리지 않았다.

국민을 향해 던지는 이보다 강한 변론도 없었다.

그러나 1시간18분에 걸친 드라마를 보고 난 후의 뒷맛은 개운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공화.민주로 갈린 두갈래 청중의 전혀 다른 반응 때문이다.

간간이 기립박수를 보내긴 했지만 공화당 쪽의 수근거림과 팔짱낀 모습이
민주당 쪽의 과장된 환호와 대비되는 장면은 미국정가가 얼마나 깊은 골을
형성해놓고 있는지를 반증하고도 남았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