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쓰는 경제학'' <하> 경제학의 새방향 ]

바뀌고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이 아니다.

사회를 지탱하고 이끌어온 논리적 기반까지 옛 것이 아니다.

존재하고 성장하는 원리 자체가 달라졌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양적 성장에 과녁을 맞춘 경제학도 그자리를 차고 앉아 있을 수 없다.

자본집약에서 정신집약으로 틀이 바뀌어야 한다.

환경이 달라진 각종 전제조건들은 새 개념으로 대체되지 않을 수 없다.

주류를 차지하는 정보와 지식산업 체제에 걸맞는 인프라가 돼야 한다.

기계의 효율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력을 극대화시키는게 그 목표다.

<> 양자역학으로의 이동 =산업사회를 지배한 논리는 뉴튼역학이었다.

뉴튼역학은 일상세계의 사물을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논리로 지구상의 모든 물체와 천체가 움직인다
는 개념이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한 사물의 위치와 상태엔 변함이 없으며
움직이기 시작하면 일정한 속도로 이동한다는게 기초원리다.

주는 힘이 있으면 받는 힘이 있고 두 힘은 방향만 다를 뿐 크기는 같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질량과 힘에 의해 사물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기계론의 세계관이다.

여기서는 모든 이동이 비례적이거나 연속적이다.

그래서 위치와 운동속도를 알면 미래의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이
작용한다.

시간과 공간, 물질과 인간이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객관성의 세계다.

항상 작용과 반작용이 같은 균형의 세계이기도 하다.

경제논리도 뉴튼의 질서를 따랐다.

아담 스미스에서 근대의 수리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정은 뉴튼역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핵심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동적평형이다.

가격 함수로써 공급과 수요는 연속적이고 비례적으로 움직이며 균형을
추구한다.

시장은 작용과 반작용이 같은 힘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세계를 공황에서 탈출시킨 케인즈 이론이 관심의 촛점을 마이크로에서
매크로로 돌려놓았지만 뉴튼의 세계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투자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국부를 증진시킨다는 승수이론과 유수정책이
그 핵심이다.

증기기관이 뉴튼역학의 공학적 응용이라면 케인즈 이론은 경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힘과 압력이 작용하면서 또다른 힘을 만들어내고 피드백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다.

이제 질량과 힘에 근거한 인과의 사슬은 끊어지고 있다.

물질로부터의 탈출이다.

새로운 세계관을 연 기폭제가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은 전자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이중성에서부터 출발한다.

불규칙한 움직임 때문에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는 불확정성
의 원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특정사건을 예측하지도 않으며 예측할 수도 없다.

다만 지금 상황으로 볼 때 미래의 상황이 일어날 확률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원자이하의 세계는 바늘끝 만한 조그마한 물질속에도 무수한 아원자가
역동한다.

움직임은 연속적이거나 비례적이지 않다.

시간과 공간도 절대적이 아니다.

물질은 질료가 아니며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우주는 서로 연관된 관계의 망(네트워크)이다.

양자역학은 불가측한 전자를 통제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면서 일상생활로
현실화되고 있다.

양자론의 규칙에 따라 전자의 움직임을 제어해 정보전달에 사용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그 결과 물질사회를 제약하던 시간과 공간의 벽은 컴퓨터와 손가락 끝으로
허물 수 있게 됐다.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쇼핑센터가 됐다.

빛의 속도를 인간이 현실에서 쓸 수 있게 됐다.

<> 양자경제론 음미 =뉴튼역학과 양자역학의 차이는 세상을 뒤집어 놓고도
남을 만하다.

부의 원천부터가 달라졌다.

경제활동을 측량하는 잣대부터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자원의 개념은 물론 생산 유통 교환 분배의 형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분석돼야 한다.

<> 미시경제 =여기선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미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술이 진보할 때마다 철지난 창조물들의 값은 상상이 안되게 떨어진다.

기술은 아침저녁 발전한다.

새로운 조류가 끊임없이 만들어 진다.

이동은 불연속적일 수 밖에 없다.

계단모양을 연상할 수 있다.

더욱이 계단과 계단 사이는 예측불능이다.

변화가 단속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관찰과 그다음 관찰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

단속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개념의 연산자가 필요하다.

산업사회의 상품가격은 장기적으로 오르게 돼 있다.

물질의 희소성 때문이다.

하방경직적 구조다.

이에비해 두뇌상품은 장기적으로 값이 내릴 수 밖에 없는 상방경직적 체질
이다.

제품에서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작기 때문이다.

상품의 생산함수, 즉 투입요소와 생산물과의 관계에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도 그 요인이다.

같은 규모를 추가투입할 때 나오는 산출물은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어
한계생산성은 체증하고 한계비용은 체감한다.

뒤집어진 생산함수를 설명할 논리가 필요하다.

<> 거시경제 =국내총생산(GDP) 집계의 모순부터 바로 잡혀야 한다.

GDP를 계산하는 최종생산물의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 시장가치의 총량이다.

그런데 최종생산물 가격에서 차지하는 물질비중이이 산업사회 제품과
정보화사회 제품간에 현격한 차이가 생기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재화와 서비스간 가격구성의 모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총량에서 차지하는 서비스 비중은 극히 미약했다.

정보제품과 산업은 서비스산업과는 비교가 안된다.

순전히 정신 제품인 컴퓨터소프트웨어는 나날이 그 규모가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선진각국의 부가가치를 올리는 원동력이다.

미국의 "인플레 없는 성장"을 이끄는 엔진도 정보산업이다.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는 데도 미국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유도
인터넷 관련 주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보.지식산업의 부가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척도가 만들어
져야 하며 가격구성상의 모순이 해결돼야 하는 이유다.

이와함께 GDP가 국민총생산(GNP)을 대체하게 된 배경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글로벌화"로는 부족하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유수 기업들 간의 합병은 외형상의 거대화와
다국적화로 그치지 않는다.

국제적인 산업의 수렴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경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통합이다.

적과 합치는 상생논리의 산물이다.

통합의 결과는 모기업과 계열기업이 아니라 넷트워크의 형태로 나타난다.

양자경제적인 결합이라는 얘기다.

<> 국제경제 =국제경제는 국경간에 이루어지는 실물과 화폐의 흐름을 주요
분석대상으로 한다.

이제는 여기에 정보의 흐름이 추가돼야 한다.

정보와 지식이 엄청난 규모로 오가고 있다.

실물과 화폐이동의 중요성은 이미 상당히 퇴색됐다.

경상수지 적자를 가장 많이 내는 나라라 가장 성공하고 있고, 흑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고전하고 있다.

"수출입국"이라는 구호는 국제시장에 자퇴원서를 내는 꼴이나 다름없다.

환율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은 하나의 화폐만 쓰기 시작했다.

각 국가의 화폐가치는 상품구입과정에서 두드리는 계산기 안에서만 존재
의미를 갖는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국가에 이어 아시아의 금융센터인 홍콩에서마저
미국달러를 법정화폐로 쓰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환율중상주의는 "21세기에서도 금이 유일한 재산"이라고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경제의 건전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국제
수지와 환율의 개념 재정립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위기는 국제경제가 상생논리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저 혼자만 살려는 나라는 기어이 밀려난다는 생태계적 질서다.

환율과 국제수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국제간의 협조과 관건이라는 점이다.

결국 국경을 전제로 만들어진 국제경제론의 원리와 개념들은 "지구경제론"
으로 바뀌어야 할 순간이다.

< 도움말 주신분 : 윤주환 패러다임 전환 국민교육센터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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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반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