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미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장 >


나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서랍속의 행복을 세는 습관이 생겼다.

살다보면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는 안되는 일이 더많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치않을 때 머리가 꽉차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책상서랍을
스르르 연다.

꽃모양의 은핀이 나를 향해 웃는다.

늘 꽃처럼 활짝 웃고 살라는 말씀과 함께 핀을 건네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거기에 있다.

힘들때마다 생각이 난다는 쪽지와 함께 예쁘게 포장된 향수, 방 옮긴 것을
축하한다는 메모와 함께 두고 간 몽당연필, 파리 시내 허름한 호텔에서
마셨던 와인병의 코르크마개, 선명한 유성펜으로 적은 날짜가 돋보이는
초코파이 등도 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 선물로 준 양철 핀 등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는 편지와 엽서들, 어느 공예가가 준 귀걸이, 조개가 붙어 살다 하나가
되어버린 조약돌, 남편이 여행하다 내게 건네준 금도금된 메추리알, 어디
사는 소의 목거리에 걸려있었던 건지 소리가 구수한 소방울, 진짜 견고한
쇠로 만들어져 나를 위해 특별히 사왔다고 역설하던 친구가 준 손톱깍기,
온갖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호도 한개, 파란 풀줄기로 만드렁 진짜 메뚜기
처럼 보였던-그러나 이제는 누렇게 딘 메뚜기, 어머니가 아껴 끼시다 공항
에서 빼주신 반지, 그리고 완도바닷가에서 누군가 주워다 준 성냥갑속의
작은 조가비 여섯개...

나의 큰책상에는 서랍이 일곱개 있다.

그안에 있는 잡다하지만 소중한 행복들을 하나 둘 들추다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너무많아 혼자 미안해하지면 인생의 참모습이 나눔에
있음을 곱씹게 된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상자에 이물건들을 다 담아 가슴에 안고 가고 싶다.

그리고 심판자앞에 가서 그것들을 이생의 이력서로 내놓고 싶다.

나는 이렇게 사랑하다 왔노라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