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

작년 한국경제의 핵심과제가 IMF 응급처치에 의한 목숨부지였다면 금년은
기능정상화와 활력회복이라 볼수 있다.

응급처치 상태에선 국가보도와 경제파국을 막는데 전력을 경주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한국경제가 파국까지 가는게 아닌가 하는 비관론도
있었으나 이젠 그런 우려는 가신 것 같다.

그런데 조금 숨을 쉴만 하니까 낙관론들이 너무 고개를 들고 있다.

너무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고 꿈과 희망을 주려는 뜻은 좋으나 그것이 한발
자국 더 나가면 다시 긴장해이와 과분수로 연결된다.

비록 금년에 플러스 성장으로 돈다 해도 2%선을 크게 넘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작년의 5%가 넘는 마이너스성장에서 대단한 반전이지만 아직은 비정상
적 저수준이다.

작년에 겁나게 추락하던 경제가 이제 겨우 하강세를 멈췄다는 것이지 아직
재상승의 움직임은 없다.

이제까진 경기가 바닥을 치고 나면 힘차게 상승하는 패턴이었으나 이번만큼
은 다른 것 같다.

산업기반 등 성장에너지가 너무 타격을 받은데다 아직 새 에너지가 안보이
기 때문이다.

금년 성장률 2%는 한국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많은 해외빚을 갚으면서 실업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억제하고 그런대
로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5~6%선의 성장이 필요하다.

개발연대의 평균성장률인 8~9%선은 불가능하더라도 잠재성장력을 5~6%선으
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몹시 고달픈 앞날이 될 것이다.

경제가 좋아졌다는 환상때문에 벌써 곳곳에서 풀어진 모습이 보이고 있다.

바로 이런 움직임이 경제회복을 더 더디게 할 것이다.

눈앞에 벌어진 현실은 아직도 냉엄하고 험악하다.

구조조정작업만 해도 이제까지는 낡은 시스템을 깨는데 초점을 두었다.

부실은행과 기업을 퇴출시키고 선단식 대기업구조를 분쇄하고 구조조정과
빅딜(Big Deal)에 의해 과잉부채와 설비.인력감축의 길은 열었다.

개발연대에 뿌리를 둔 차입에 의한 확장시스템을 깨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뒤의 새 시스템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미국식 시장경제만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형태로 실체화될지 아직
윤곽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경제의 핵심역할을 해야 할 금융부문에 있어 금융전업자본과 금융가(Banker)
가 없어 대기업에 맡기지 않으면 관치를 계속해야 할 형편이다.

선단식 경영이 여러 문제를 낳았으니 그것을 재벌개혁이란 이름 아래 깨는
것까지는 시원했는데 그것을 어떤 시스템으로 대체할 것인가.

외국의 대기업들과 어떻게 경쟁할 것이며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기업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해외매각과 외자유치를 강권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국부유출과 경제예속화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외국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본자유화를 굉장히 서두르는데 핫머니에 대한
방어대책은 있는가.

은행재무구조개선을 위해 합병도 하고 공적자금도 많이 쏟아 부었는데
그것이 경쟁력으로 연결되는가.

또 은행들이 너무 위축돼 멀쩡한 기업들마저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실은행을 살리고 실업경기대책을 한다고 재정적자를 크게 늘렸는데 그
부담은 두고두고 어떻게 질 것인가.

가장 급한 것이 경제활력의 회복이다.

구조조정과 재무구조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설비투자가 크게 움츠러들어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없다.

각 기업마다 수익성과 캐시플로(Cash Flow)가 강조되어 이젠 1백% 확신
없이는 설비투자를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의 구조상 내수진작이나 경기진작책 가지고는 본격적 성장활력
회복은 어렵게 되어 있다.

기업들이 워낙 주눅이 들어 모험과 도전을 당분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설비투자는 일어나지 않게 되어 있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다는 것을 실감
하게 될 것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때 한국경제의 본격적 어려움은 지금부터라고
할수 있다.

눈앞에 닥친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잘못
된 것을 깨는 것보다 좋은 것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