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진출 : 86년8월 합작회사 맥도날드(주식회사 맥안) 설립
<> 영업 개시 : 88년3월 서울 압구정동에 1호점 개점
<> 영업지역 양분 : 91년 신맥(대전 이북)과 맥킴(대전 이남) 설립
<> 매장수 : 1백30개
<> 매출 : 97년 1천억원, 98년 1천2백억원
<> 직원수 : 아르바이트 직원 포함, 약 1만명
<> 주요 메뉴 : 빅맥 불고기버거 치즈버거 맥너겟 프렌치프라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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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의 전응준 이사는 포장마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끌려 포장마차에 들어가더라도 음식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내내 주인의 손을 쫓는다.

요리하던 손으로 돈을 받고 그 손으로 다시 요리하고..

전 이사로서는 도저히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성격이 고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전 이사는 맥도날드에서 성품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그런 그가 까다롭게 구는 것은 "맥도날드 맨"이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사람들은 대부분 그처럼 포장마차를 싫어한다.

입사한지 반년만 지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저분한 식당은 피하게 된다.

청결은 "맥도널드 정신" 중 하나다.

맥도날드 점원들은 매시간 손을 씻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쓸고
닦는다.

영업은 밤11시에 끝난다.

그러나 점원들은 새벽2시가 넘어야 퇴근한다.

그때까지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기계는 뜯어서 소제하고 소독한뒤 재조립한다.

고객이 지켜보는 것도 아니고 8시간만 지나면 다시 돌릴 기계인데도 날마다
이렇게 한다.

맥도널드가 합작으로 한국에 진출한 시기는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 지난
88년.

소득 수준이 올라 외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맥도널드는 맨먼저 서울 압구정동에 매장을 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맥도널드의 깨끗한 매장은 그 자체로도 구경거리였다.

게다가 색다른 맛의 햄버거를 김치찌개보다 싸게 판다고 알려지면서 고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엔 한시간씩 기다렸다가 햄버거를 사먹고 가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한국 진출 첫해인 88년 매출은 19억원.

그야말로 출발은 미미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걸음"이 빨라졌다.

94년 3백억원이던 매출은 3년뒤인 97년엔 1천억원이 됐다.

그 사이 매장수는 31개에서 1백14개로 늘었다.

98년 예상매출액은 1천2백억원.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20% 늘었다.

게다가 매장도 16개나 새로 열었다.

지난 10년간 맥도날드가 한국에서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것은 "맥도날드
정신"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정신"이란 "깨끗한 매장에서 싸고 맛있는 햄버거를 친절하게
파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본사는 한국맥도날드가 이를 준수하는지 철저하게 감시했고 한국
맥도날드 사람들은 이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맥도널드는 "깨끗한 곳" 또는 "맛에 비해 값이 싼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엔 "맥도날드 정신"이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영업시간에 손으로 머리를 만진 아르바이트 점원에게 손을 씻으라고 지시
하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멀쩡한 햄버거를 만든지 10분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리는 것을 보고 코웃음
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지금도 신입사원들은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할 줄은 몰랐다"며 놀란다.

이에 대해 신언식 사장은 ""맥도널드 정신"이 한국의 외식문화를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자평했다.

한국 맥도날드로서는 지난 10년은 투자기간이었다.

흑자다운 흑자를 기록하지도 못한채 끊임없이 투자만 했다.

하지만 이 회사 임직원들은 내년부터 "흑자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젠 노하우를 쌓을 만큼 쌓았고 경쟁에 필요한 규모도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맥도날드는 요즘 한국 진출 10주년을 기념해 햄버거를 10년전 가격에
판매하는 이색행사를 벌이고 있다.

물론 할인대상품목은 햄버거 치즈버거 등 2가지 뿐이다.

하지만 이 행사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