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이튿날 몇몇 이웃과 서울 정릉의 한 복지시설에 다녀왔다.

가파른 계단 끝, 여기저기 버팀목을 댄 허름한 집엔 의지할데 없는 아이들과
이들을 돌보는 이모(가족공동체를 지향, 이렇게 부른다) 두사람이 살고
있었다.

"애들을 바르게 키우는 것만이 우리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거두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 이땅의 미래는 없습니다"

자신의 몸도 불편한 이모 한사람의 말을 들으며 내심 너무 부끄러웠다.

연초여서일까, 많은 미담 가운데 특히 자신의 골수를 두번이나 기증했다는
이연(25)씨의 소식은 놀랍다.

골수기증자로 등록한 6천여명중 90%가 막상 이식자가 나타나면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골수기증이 정작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내 불편을 조금만 참으면 남에게 새 생명을 줄수 있다는 마음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천에 옮겼다는 얘기는 새해 벽두에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우리 사회엔 말로는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면서도 실제론 자기것 챙기기에
연연하고 기득권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뿐이랴, 충분히 갖고도 더 갖지 못해 혹은 더 대접받지 못해 아웅다웅하는
추한 사람투성이다.

이런 속에서 작은것이라도 쪼개려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행동은 그 자체로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다.

연초 전직대통령들이 시설아동을 위해 푸짐한 세뱃상을 차린 모습은 보기
좋았다.

"거래"를 위해 다녀가는 하객보다 맑고 깨끗한 어린이들의 세배를 받으며
그들의 마음 또한 한결 흐뭇하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어김없이 돌아올 것이다.

봄이 봄같으려면 언짢은 현실이라도 냉소하기보다 깊게 통찰하고 개선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한다.

올 한해 그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켜켜이 쌓인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고
"하늘속같이 맑은 기운이 마음의 곳간을 넘치는 사람"(박재삼 시)들이
늘어나기를 기원한다.

김종길의 "설날아침에"를 다시 읽는 것도 그같은 소망에서다.

"매양 추위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것이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끔더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따뜻한 한잔술과
/한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한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