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패는 한번이면 족하다.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와 금융계가 지난 90년대초 일련의 금융산업 구조조정 작업을
성공시킨 비결은 따지고 보면 이렇게 평범했다.

80년대 말 미국 금융계는 저축대부조합(S&L)들의 급속한 경영악화로
전반적인 위기를 맞게 됐다.

주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해온 S&L들이 80년대 후반 미국 부동산 경기의
하락과 함께 눈덩이처럼 늘어난 부실자산으로 속속 경영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80년부터 88년 사이에 도산한 업체가 5백7개에 달했고 2천9백23개
S&L은 부도직전의 부실상태로 몰렸다.

S&L들이 연쇄 부실의 늪에 빠진 원인은 최근 한국 금융기관들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다.

단기 저축예금을 재원으로 삼아 만기 25~30년짜리 장기 부동산저당 대출에
운용하는 등 "기간 불일치"에 둔감한 경영을 했던 것.

그러다가 부동산 값이 급락하자 대부분의 자산이 휴지조각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금융산업내의 경쟁마저 격화돼 대부분 S&L의 예대마진이 네거티브로
돌아서면서 전체의 80%가 적자를 내는 상황이 됐다.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것은 금융감독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이었다.

주무 감독부서인 연방주택대부이사회(FHLBB)는 S&L의 대거 부도가 잇달았던
88년까지도 관련기관들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지 않았다.

저축 이자율에 대한 상한선을 폐지하고 적정 자본비율을 5%에서 3%로
낮춤으로써 S&L들의 "숨통"을 터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조치는 자금압박을 받고 있던 S&L들로 하여금 고수익을
노린 고위험 자산 투자를 유도하는 등 오히려 부실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몰고 왔다.

미국 연방 정부는 이같은 정책 실패가 엄청난 "재앙"을 야기한 것으로
드러나자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금융 수술대책"을 마련했다.

구조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과감
하게 퇴출시킴으로써 금융계 전반의 연쇄 부실화를 사전 예방한다는게
새로운 대책의 골자였다.

89년 8월에 내놓은 "금융기관 개혁, 구제 및 규제 강화법(FIRREA)"이 그
시작이었다.

이 법에 근거해 연방 재무부 내에 저축기관 감독청(OTS)을 신설하는 등
부실 저축기관에 대한 감독기구를 정비했다.

이어 1천2백58억달러의 재정자금을 투입하면서 부실 S&L들을 과감하게
퇴출시켰다.

이들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를 전담키 위한 조직으로 정리신탁공사(RTC)도
설립했다.

미국 정부는 이어 91년 12월에는 "연방예금보험공사 개선법(FDICIA)"을
제정해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를 법제화했다.

이 법에 따라 조기 시정조치가 도입되고 금융기관은 자본 비율에 따라
5등급으로 분류됐다.

이중 자기자본비율이 2% 이하인 금융기관은 원칙적으로 90일안에 파산관리인
을 선임해 자동적으로 파산처리 수속에 착수하도록 했다.

미국 재무부는 금융기관을 처리할 때 무조건 "최소 비용의 원칙"을 도입해
파산처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최대한 경감토록 했다.

대표적인 예로 95년 폐쇄명령을 내린 퍼스트트러스트뱅크에 대한 처리를
꼽을 수 있다.

미국 금융당국이 폐쇄 명령을 내렸을 당시 이 은행의 총자산은
2억4천5백60만달러, 총예금은 2억8백80만달러였다.

그러나 자기자본비율이 93년 8월 4.99%에서 폐쇄조치 직전에는 0.83%로
악화돼 있었다.

당국은 퍼스트트러스트뱅크에 대해 일단 적기 시정조치를 명령해 자구노력
을 취하도록 했다.

그러나 부실자산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결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통해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처리 방안"을 찾아내도록 했다.

이때 도출해 낸 것이 입찰을 통한 선별적 자산.부채 이전(P&A) 방식이었다.

퍼스트트러스트뱅크를 그냥 청산했을 경우 예상 손실 규모가 3천1백만달러
였던 반면 P&A를 통해 손실을 1천6백만달러로 줄일 수 있었다.

이후 미국 금융계에서는 고수익.고위험 자산을 선호해 정부의 재정부담과
납세자의 조세부담을 가중시켜 왔던 일부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완화됐다.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안전성이 개선된 것은 물론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