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제국의 시대"라고 말했다.

지난 1백년의 연표를 작성해보면 2차대전 이전까지는 그의 지적이 정곡을
찌르고 있음을 알수 있다.

후반부는 차가운 이념대립의 시대였으며 이제 대혼돈의 시대로 바통을
넘기려 하고 있다.

그것은 시장경제와 경제인의 승리(프란시스 후쿠야마: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였으나 시장의 냉혹함을 부인하는 또다른 흐름도 부상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선정한 20세기 1백대 사건은 한국이 어떻게 암흑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 개발연대를 행군해왔는지와 세계의 민족과 국가들, 나아가 인류
는 어떤 투쟁과 고난의 족적을 밟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돌아보면 그것은 근대화를 향한 노도와 같은 물결이기도 했지만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된 시장을 놓고 내연하는 민족주의가 각축했던 대경쟁의 시대
이기도 했다.

일제의 조선병탈과 함께 20세기를 연 한국은 동양사 연표의 첫머리에 올라
있는 러.일전쟁을 거쳐 기어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세계사에 강제편입되는
암흑기로 들어선다.

춘원이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는 것을 보면서 근대문명에 압도당하고 있을 때
이미 서양에서는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오르고 근대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현대물리학으로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20세기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사라예보의 총성은 1차대전을 불렀다.

시기적으로 보면 1870년대의 대공황과 1930년대 대공황의 간주곡이랄 수
있다.

바이마르공화국이 히틀러를 잉태하고 있는 동안 중국 인민들은 지구의
위도와 경도를 넘나드는 12만km의 대장정을 감행했다.

곧이어 터져나온 2차 세계대전은 팍스아케리카나의 등장을 천하에 선포한
사건이었다.

한국인의 불행은 전쟁과 독재 광주민주화운동등으로 이어졌으나 기어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정치도 뿌리를 내리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지난 1백년을 돌아본다면 20세기는 한국인들에게 분명 대성취의
시기였다.

이 기간에 과학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애니악(최초 컴퓨터)은 인터넷으로까지 발전했고 네티즌이라는 21세기형
인류를 탄생시켜놓고 있다.

유전자의 구조가 밝혀지고 양을 복제하는 창조사업에의 도전이 우려속에
감행됐다.

기계학과 화학이 근대를 지배했다면 20세기는 물리학의 꽃을 피운 동시에
21세기 생물학의 시대를 예비한 시대였다.

플라스틱 나일론 트랜지스터 등 신물질과 새상품들을 "무제한으로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하는" 물질숭배형 사회를 창조해냈다.

여기에는 신기술에 뒷받침된 매스커뮤니케이션도 기여했다.

이러는 사이 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공산주의가 한때의 패권을 뒤로 하고
끝내는 무대에서 내려섰다.

레닌이 핀란드역에 모습을 드러낸 때(러시아 혁명 발발 1917년)부터 기산
하면 이 비극적 실험에 76년이 소요됐다.

냉전으로 이념대결이 끝났지만 곳곳에서 인종과 종교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됐다.

아시아에선 97년 인종도 종교도 아닌 "외환위기"가 덮쳐오게 된다.

30년대 공황이 후진국 이탈리아와 독일을 괴롭힌 문제였다면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개발경제의 패퇴였으며 아시아인들에 대한 저주이기도 했다.

이제 20세기 1백년과 르네상스 1천년이 모두 역사의 지평선으로 떨어지고
있다.

세기말적 허무주의와 지적 무정부주의가 인간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리고 새 1백년과 1천년이 시작된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