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끝없는 분쟁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알제리 아프간 이란 스리랑카 발칸 중동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등 전대륙에 걸쳐 갈등과 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인종갈등과 종교및 국경분쟁등이 20세기를 넘길 수는 없다는 듯이
세기말을 맞아 더욱 불을 뿜고 있다.

작년 12월 중순 터져나온 미국의 이라크 공습도 지구촌 분쟁 항목에서
결코 빠질 수 없다.

지구촌을 어지럽히고 있는 분쟁들은 20세기를 규정하는 각종 이념적
스펙트럼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더욱이 구소련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된 냉전구도의 와해는 오히려 지구촌을
무한 분쟁으로 밀어넣고 있다.

냉전이 물러난 곳에 억눌렸던 욕구들이 분출하면서 지역분쟁의 전선을
형성해놓은 결과다.

공산주의 이념이 무너진 곳에 "민족"과 "종교"라는 19세기적 이념이
자리를 차지했다.

강대국들이 철수한 곳에서는 권력장악을 노리는 국내세력들 간의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유일한 슈퍼 파워라고 하지만 미국이 내세우는 세계화라는
이념이 지구촌 전체를 통제하기에는 아직 힘이 부치는 것으로 보인다.

21세기에 다다르기까지 모든 분쟁들이 정리되고 지구촌에 평화구도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던져져 있지만 전도는 불투명하다.

<> 화약고 발칸 =발칸 분쟁은 구소련의 붕괴가 어떤 내연된 갈등을
현재화시키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인종 청소(ethnic cleans)"라는 원시적 폭력성을 드러냈던 유고 지역의
종교및 인종갈등은 현대문명을 부정하는 반이성적 대결구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종족및 종교간 분열이 시작된 유고 지역은 1천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역사적 갈등을 현재로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동서로마의 분열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지역의 대립은 언제든지
건드리면 터질수 있는 지구촌의 화약고가 돼버렸다.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독립을 선언(91년)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지역, 그리고 92년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는 세르비아계 인구의 극렬한
반대를 불렀고 이는 즉각 인종이 대립하는 내전양상을 띠며 국제전화해갔다.

회교(보스니아)와 정교(세르비아), 그리고 가톨릭(크로아티아)이 대립하는
가운데 인종청소라고도 불리는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살상전이 되풀이 된
이 지역이 잠시 열전을 멈춘 사이 이번에는 신유고연방내 코소보지역의
독립운동이 내전을 초래하며 98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다.

코소보지역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지위를 둘러싼 갈등이 역시 회교를
신봉하는 인접 알바니아의 개입을 부를 것인 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 숙적 인도와 파키스탄 =2차대전 직후 제1차 독립전쟁을 통해 분리된
이들 두나라는 지난 71년까지 세차례 전쟁을 치렀다.

98년8월에는 분쟁지역인 캐시미르를 사이에 놓고 종전 이후 최악의
포격전을 벌였다.

이슬람교와 힌두교로 갈리는 종교와 종족분쟁은 지구촌 전체의 세력균형을
위협할 정도로 긴장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잇달아 핵실험에 성공해 지구촌 핵균형의
기본 골격을 흔들어 놓기까지 했다.

초강대국 체제의 붕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성공이기도 했던 셈이다.

<> 이슬람 내부의 갈등 =동족상잔이 더 무섭다는 것은 이슬람내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의 분쟁이 그것이다.

수니파를 축으로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과 시아파로 구성된
반대세력들간의 분쟁에는 이란과 파키스탄도 깊숙이 연관돼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가 개입한 내전의 상처도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는 인접국가와의 마찰까지 치르고 있다.

<> 콩고의 광역전쟁 =콩고 내분은 전체 아프리카를 끌어들이는 국제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오랜 갈등은 르완다를 필두로 부룬디 우간다 앙골라
탄자니아 잠비아를 투치쪽 지원세력으로 하고 짐바브웨 레소토 말라위
모잠비크 나미비아등을 다른 쪽으로 하는 아프리카 편갈이로 번지는 중이다.

자칫 콩고가 발칸화되는 양상까지도 우려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일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쟁중재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으나 투치족과
후투족간 반목이 워낙 뿌리깊은 것이어서 언제 열전으로 폭발될지는
미지수다.

<> 내연되는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사태는 국제적 분쟁은 아니지만
세기말을 살아가는 지구인들이 어떻게 분열하는 지에 대한 분쟁구도의
구조적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인과 화교들간의 분쟁(98년5월)으로 시작해
동티모르의 분리독립 운동,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반목(98년10월)등이
주제를 달리해가며 진행되고 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인도네시아를 장기간 통치해왔던 수하르토
독재가 와해되면서 사회 각구성원들간의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해 있는
상태다.

좋은 권력이었든 나쁜 권력이었든 낡은 권위주의적 권력의 와해가 심각한
소요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례다.

이런 분쟁과 소요가 새로운 질서를 찾으면서 화해와 평화공존을 회복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 균열되는 유럽의 균형 =유럽연합(EU)은 앞으로 10년내에 에스토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등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기로 했다.

또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등을 장기적으로
EU에 가입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EU의 이런 동진은 러시아등 슬라브 지역에 상당한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

그리스 정교권역과 가톨릭권의 경계는 오랫동안 유럽을 동서로 갈라
왔으나 유럽이 경제력을 내세운 동진을 감행할 경우 장기적으로 이 역시
분쟁요소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발칸으로부터의 분쟁을 유럽전역으로 확대시키는 계기를 만들수도
있다.

< 정규재 기자 jk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