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고 있다.

토지 노동 자본은 더이상 생산의 3요소가 아니다.

''수확체감의 법칙''과 ''자원의 희소성''은 이제 구시대이 경제원리다.

''규모의 경제''도 쓸모없는 경전 구절이 돼 버렸다.

거대한 조직사회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조차도 불분명해졌다.

한마디로 수세기동안 지구촌을 지배해온 산업사회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끝이라고 할만하다.

물질세계를 다시는 건너지 못할 강의 저편으로 밀어내는 힘은 바로 정보화
사회로의 천이다.

경쟁력의 원천과 인간이 탐구할 대상이 ''아톰(atom.물질문명)''에서 ''비트
(bit.정보문명)''로 옮아가는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농경사회가 자연에서, 산업사회가 자본에서 가치를 얻어냈다면 정보화사회는
정신과 지식에서 가치를 창조한다.

전체 가격중 원가의 비중이 절반이나 되는 산업사회의 경제학과 가치관으론
새 시대를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원가의 1%도 안되는 손톱만한 규소 조각에 수억달러 어치의 가치가 담긴다.

그리고 그 창조물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전달되면서 3차원의 시공개념을 파괴하고
있다.

보이는 세계(macrocosm)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microcosm)로의 이동이다.

이것이 바로 지본에서 자본을 거쳐 뇌본사회로의 변화다.

창조의 시대에 경쟁력은 "하드(hard)"가 아닌 "소프트(soft)"에서 나온다.

"값싸고 질 좋은"이라는 말은 "정보"라는 단어를 수식하지 못한다.

무실물의 세상이기에 제조 원가와 재료는 중요하지 않다.

창조된 가치가 승패를 좌우한다.

뇌본사회는 상품에서뿐 아니라 사고와 시스템 조직 제도 인간형 등 우주의
모든 것들에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만들어 놓고 있다.

양의 경쟁은 무의미해졌다.

물질문명에선 누군가가 파이의 한쪽을 차지하면 자기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나 정보는 나눌수록 가치가 커진다.

가치창출 한도는 무한대다.

시장도 무제한으로 만들어 진다.

"제로 섬"이 아닌 "플러스 섬"의 세계다.

바로 "상쟁"에서 "공생"을 넘어 "상생"으로의 전환이다.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치르지만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윈-윈(win-win)
게임이다.

이 전쟁에선 "스톡(stock)"은 힘이 되지 못한다.

"플로우(flow)"가 중요하다.

스톡의 시대 때 빚을 내서 챙겨두었던 엄청난 부동산들은 플로우 시대엔
몇푼의 달러보다도 맥을 못춘다.

거품이 꺼지면 오히려 파국의 재앙으로 귀결된다.

자산의 소유보다는 관리가, 공장 확장보다는 우수한 인력과 무형자산
축적이 관건이다.

기계에서 인간으로의 변화며, 양적 팽창의 시대가 끝났음을 대변해 준다.

플로우의 시대는 수직적 논리를 거부한다.

2차대전이후 극에 달했던 거대한 정부와 관료파워는 이제 멸종의 예고장을
받아 놓고 있는 쥬라기 공룡이 돼버렸다.

서열과 수직적 질서, 지시와 감독은 창의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스피드와 유연성을 필수로하는 시대적 변화는 수평과 분권을 요구한다.

조직은 피라미드형에서 네트워크형으로 바뀐다.

과감한 권한이양과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제도적인 직위가 권한을 보장했지만 이젠 직위와 권한은 별개다.

권력도 창출된다.

관료사회 해체론이 점점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직렬"에서 "병렬사회"로의 전환이다.

병렬사회의 인간형은 입체인간이다.

선과 면만을 파악해선 생존이 불가능하다.

카오스(chaos)적인 환경이 다중선택(multi-option)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 메카트로닉스 바이오케미칼 텔리워크 등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이 태어난다.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진행되며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한다.

순식간에 새로운 조류가 만들어졌다가 곧바로 잊혀진다.

객관적 진리와 상식들이 갑자기 "오류"가 돼 버린다.

이런 복잡계의 세계는 획일적 인간을 도태시킨다.

여기에선 창조적 인간이 최후의 승자다.

유한한 자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었던 산업사회에선 "IQ(지능지수)"의
높낮이가 인간의 수준을 가름했다.

분석과 계산능력이 그 덕목이었다.

그 뒤 인간의 정서가 중요시되면서는 "EQ(감성지수)"가 높은 인간을 찾았다.

인간정서 함양 운동이었다.

이젠 "AQ(Analogy Quotient,유추지수)"가 지배인간을 가른다.

정보를 가공해 지식을 창출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이다.

계산능력보다는 탐구와 추리를 높이 산다.

반듯한 인간보다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새로운 세기를 주도할 "골드 칼라(gold color)"다.

자본가를 대신해 뇌본가가 경제권력의 주체가 된다.

산업사회에선 자본가와 노동자,기계가 따로 였지만 새 세계에선 인간
자신이 생산수단이자 주체다.

잊혀졌던 인성이 새삼스럽게 강조되는 것도 그래서다.

스스로 창조하면서 인간이 하나의 소우주임을 자각하는 것은 변화의 또다른
한 단면이다.

물리(physics)에서 생명(biology)으로의 환골탈태다.

기술과 과학이 인간의 실존을 재발견하고 인간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데로 모아지는 것은 물질만능에 대한 반성일 수 있다.

세상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진화"나 "부흥"과는 대비된다.

낡은 틀의 일부를 수정.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선다.

수십년간 성공적이라고 믿어왔던 관행과 인식을 폐기시키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새 세기는 20세기의 연장선 상에 있지 않다.

"신"이라는 글자 하나를 덧붙인 신산업사회가 아니다.

16세기 프톨레마이우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뒤집힐 때에
버금가는 역사적 변곡점이 이 순간이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