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홍 < 경총 상임부회장 >

최근 의보통합문제가 초미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통합을 전제로 한 정부안이 현재 국회에 상정돼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77년 조합주의 방식을 근거로 도입된 의료보험제도는 그 이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로 발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사회보험방식의 국가중 대부분은 조합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수의 국가가 조합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도입시기가 직종별로 상이함에 따라 유사한 집단을 중심으로 단계적
으로 제도적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특히 각 직종의 특성에 맞는 관리운용을 위해서는 역시 조합방식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통합방식의 장점도 없지는 않다.

우선 소득재분배의 기능강화로 사회연대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재 심화되고 있는 조합간 재정격차 문제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금번 통합법안이 마련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현실적으로 정확한 소득파악이 어렵다는 데
있다.

소위 유리알지갑이라고 비유되는 근로자에 비해 자영자의 소득파악률은
단지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통계상 나타나는 소득은 자영자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신고되는 소득은
오히려 근로자가 높은 편이다.

이런 상태에서의 통합은 실제소득이 낮은 근로자가 보험료를 오히려 더
내는 심각한 소득배분의 역진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재정격차 문제도 그렇다.

현재 직장의보의 경우 적립금이 2조5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 재원을 통해 현재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역조합의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적인 땜질식의 조치이고 장기적으로는 보험재정이
다시 부실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될 경우 보험료는 더욱 높아지게 되고 결국은 소득파악률이 높은
근로자, 그리고 기업이 일방적으로 그 부담을 떠안게 됨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오늘날 지역의보의 재정이 이렇게 부실하게 된 것은 소득파악문제, 방만한
경영관리, 그리고 미흡한 정부의 재정지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기업은 근로자 보험료의 50%를 부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부는 자영자에게 27%만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도입초기에 약속한 50%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진정한, 그리고 형평성있는 의보통합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모럴해저드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또한 통합논자들이 제기하는 관리의 효율성 문제도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전국적인 하나의 거대 통합조직은 외형상 효율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익성이 강한 통합조직은 오히려 더 비대해지고 관료적, 재정부실화
문제가 더 커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오늘날 의료보험제도개혁의 세계적인 흐름은 조직의 분권화, 경쟁의 원리
도입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반 소비자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리의 경쟁력 제고, 그리고
재정의 건전화 도모에 초점을 맞추어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우리나라의 통합추진과정에서 모델이 되었던 대만의 경우에도 7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95년에 통합방식을 채택하였지만 최근들어 다시 경쟁의 원리를
도입한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난 20년 넘게 우리는 조합주의 방식을 채택, 그 나름대로 우리의 현실에
맞게 의료보험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의료보험통합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만약 자영자의 정확한 소득파악, 신설공단의 관리효율화, 정부의 재정지원
문제 등에 대해 철저한 검토없이 통합을 전격적으로 추진할 경우에는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올해 10월부터 지역과 공교가 합쳐지면서 수십만건의 민원이 발생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은 제반 문제점을 슬기롭게 해결하면서 우리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료보험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