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초의 승부"

장기불황의 수렁에 빠진 일본의 산업계에서는 상품의 이름(브랜드 네임)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견해가 통설처럼 굳어지면서 히트상품의 이름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일본의 마케팅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수많은 상품중 한가지에 눈길을 주는
틈이 0.6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 짧은 시간내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브랜드네임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상품명은 0.6초안에 소비자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뜻에서 이를
"0.6초의 승부"라고 부른다.

최근들어 이름 덕을 톡톡히 본 히트상품의 몇가지 공통점을 사례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상품이 갖고 있는 기능을 한꺼번에 모두 표시하는 이름
으로 재미를 본 대표적 기업으로 고바야시제약을 지목하고 있다.

일본 굴지의 제약회사인 고바야시제약은 어린이들이 열이 날때 이마에
붙이는 시트의 경우 "열시트", 목이 아플때 사용하는 스프레이는 "목에
바르는 스프레이" 등의 상품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같은 네이밍전략에 대해 고바야시제약 관계자는 "이제는 분위기나 이미지
만으로 상품을파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잘라말하고 있다.

장기불황에 따른 구매력약화로 소비자들이 냉정해졌고 상품의 기능과 사용
방법을 한눈에 알수 있는 표현만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대가
왔다는게 고바야시측의 판단인 것이다.

브랜드네임이 상품의 성가를 바꿔 놓은 사례는 출판계에서도 쉽게 찾을수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채 2년도 못된 기간동안 1백2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간
초베스트셀러 "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이라는 책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책의 영어 원제가 "옵티미즘(낙관주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책의 내용을 그대로 함축해 단 제목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대히트를 쳤다는 것이 서점가의 일치된 평가다.

가정용컴퓨터 시장에서 발군의 성적을 올린 소니의 "VAIO(바이오)"는
디지털생명체를 연상케해 재미를 본 또 다른 사례다.

소니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컴퓨터의 부품은 경쟁사의 것이나 우리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면서 소니가 NEC, 후지쓰 등 경쟁업체들을 물리치고 퍼스컴
시장에서 재미를 본 비결이 이름에 있음을 시인했다.

일본의 마케팅전문가들은 상품이름을 정할때 그상품이 갖고 있는 모든
특징을 담으려 하는 경향이 최근 2~3년동안 부쩍 두드러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중에는 선전문구인지 상품명인지 구별이 금방 가지 않을 정도로 설명조로
표현한 브랜드네임도 적지 않았다는게 이들의 견해다.

전문가들은 식품회사인 포카코퍼레이션의 "조용히 보글보글 끓는 수프"와
화장품회사 시세이도의 "바다의 은총으로 씻는 보디샴푸" 등을 좋은 예로
들고 있다.

일곱자 이상의 상품이름은 기억하기 어려워 안된다는게 종전까지의 상식
이었지만 이제는 전례가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포카사의 마케팅
담당자는 주장하고 있다.

< 김영규 기자 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