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평가에는 항상 뚜렷한 잣대가 있어야 한다.

가치관이 다르면 혼란이 크다.

정책목표가 옳았느냐는 문제를 제쳐두고 DJ노믹스에서 정한 6대 국정과제
중심으로 평가기준을 정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현 단계에서는 덜 가시적이므로 이를 배제한다면 지난 1년
간의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게 소모적인 논쟁을 회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본격적인 구조조정정책이 내년도에 집행될 것이므로 여기
에도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첫째, 과거를 청산하는 의미의 구조조정은 미래의 먹거리창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좀 더 명확해지는 맛이 없다.

상처를 해부하고 나면 저절로 새살이 난다고 할 정도다.

둘째, 구조조정을 "빨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구조조정을 잘 한다는 뜻은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실업자증대, 주력산업설비
의 폐기, 사회적 연결고리 상실, 도전의식 상실과 미래창조에 대한 가치저하
등 유형.무형의 국부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모든 경제주체들에 과거와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며, 미래의 먹거리장치를 제대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제거되고 대외신뢰도는 올라간 흔적이 나타나고
있는가.

셋째,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분담문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나오는 고통이나 불편함은 외국보다
는 국내, 공공부문보다는 민간부문, 그중에서 금융부문보다는 제조업과 기타
산업부문, 있는 계층보다는 없는 계층, 기성세대보다는 미래세대가 더 크게
부담하는 방식을 따랐다.

넷째, 이대로 전개된다면 우리 경제는 관치경제,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더욱 왜소해진 경제, 산업구조와 기업경영측면에서 활기가 떨어지는 경제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향후 정책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외국인들이 요구한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새로운 사대주의는 버리는
게 옳다.

우리의 냉철한 판단에 따라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를 개척해 그곳으로
자원을 이동하는 개념의 구조조정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저질러진 부채규모만 보지말고, 장래 실패할 위험만 떠들지말고,
부채의 구성을 달리하고 위험한 사업이라도 성공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게
진짜 정책이다.

재벌중심의 경제체제를 전문업체나 중소기업중심체제로, 제조업중심 산업
구조를 서비스산업중심으로, 대형설비중심에서 지식산업중심체제로 바꾸겠
다는 구상은 장기적 기본방향면에선 옳지만, 구체제를 허무는 속도와 정도는
신체제 정립 및 기능정상화속도와 맞추지 못하면 그 과도기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초래함을 잊어선 안된다.

둘째, 거품은 줄이더라도 분야별 우선순위를 가려야 한다.

공공부문은 효율성이 가장 낮고 구조조정후 파급되는 충격도 가장 적다.

미래에 쉽게 복구할 수도 있다.

또 고통부담의 시범효과도 강하다.

민간부문을 줄이는 경우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요청된다.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관련해 지원해줄 재원은 한정돼 있고 시간도 불충분
하다.

정부능력에 한계가 있는만큼 거의 모든 부실을 대강 조금씩 해소시키는
모습보다는 잘 될 곳을 사심없이 골라서 집중지원해 한시바삐 스스로 살아
나가 왕성한 활동을 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셋째, 민간기업 스스로 다양한 형태의 구조조정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노동
관행이나 제도적 장애가 없어지도록 법적 뒷받침(기업구조조정특별법)을
빨리 해야 한다.

구조조정과정에서 벌어지는 과다한 세금과 얽히고 설킨 금융관행, 개별법
차원에서 정상적 환경을 전제로 한 부처이기주의적 주장을 더 이상 방관하면
기업구조조정은 그만큼 늦어지고 그 결과 생기는 부실채권은 아까운 세금으로
정리해주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게 된다.

넷째, 경기회복이 급하다고 해서 생산분야보다는 소비분야, 제조업강화보다
는 건설과 부동산시장 자극, 수출보다는 내수촉진, 외화벌이나 외화절약보다
는 외자도입, 실물경제보다는 단기금융활성화에 치중하면 새로운 형태의
거품발생과 경제체질의 악화가 재도래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