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에 살고 있는 장기철(60)씨는 최근 시청으로부터 집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편입돼 수용당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유일한 재산인 집 한채를 철거당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막막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다.

정당하게 보상받아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길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감정평가사의 손에 장씨의 여생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감정평가법인 곽욱탁(38) 이사는 바로 장씨의 집 가격을 매겨주는 일을
한다.

부동산이나 동산의 가격을 평가하는게 그의 일이다.

곽이사는 그러나 땅보다는 사람을 보는 "인생감정사"란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일을 할때 언제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이런 꼬리표를 만들어 줬다.

그에겐 유명한 일화가 있다.

3년전 한 지방의 댐 보상지구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댐건설로 마을이 송두리째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마을사람들은 보상평가
자체를 거부하며 감정평가사와 사업시행기관 관계자의 출입을 막아 버렸다.

주민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기관의 행태를 보면
보상금도 보나마나 마음대로 결정할테니 협조할 수 없다는게 마을사람들의
주장이었다.

사업시행기관은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

이때 곽 이사가 나섰다.

그는 평가서류 대신 막걸리와 안주를 준비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사람들에 인사하고 제실에서 정중히 제를 올렸다.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후 마을사람들과 밤새워 술을 마셨다.

묵묵히 그들의 얘기만 들어줬다.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평가를 받겠다고 나섰다.

저런 평가사라면 자신의 입장에서 일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일 시작 2년차에 불과한 "초보" 감정평가사인 곽이사를 "스타"로
만들었다.

민원인들의 사정을 포용하는 "넓은 가슴"은 그의 독특한 인생경력에서
비롯됐다.

지난 80년 외대 정외과에 입학한 그는 14년이 지난 94년에야 겨우 대학을
졸업할수 있었다.

80년대초반 권위주의 정부하의 어두운 시절은 그에게 공부에 전념할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런 그가 감정평가사가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정국이 안정되자 직업을 구하게 됐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그가 남들처럼 직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동생이 감정평가사 시험을 볼것을 권유했다.

그해 10월 감정평가사에 합격한 후 한국감정평가업협회에 취직했다.

95년엔 입사동기들과 함께 미래감정평가법인의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뒤늦게 감정평가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치열했던 과거의 삶은 단기간에 그를
일류 감정평가사로 끌어 올렸다.

그는 요즘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한다.

오후 6시에 업무가 끝나지만 밤늦도록 부동산관련 외국서적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IMF 체제를 맞아 감정평가법인이 컨설팅과 부동산관리 업무도 맡는 종합
부동산회사로 변신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국내로 밀려오는 외국계 부동산회사와 경쟁하려면 종합부동산회사가 되는
길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감정평가사가 연봉 1억원을 앉아서 버는 안정적인 직업이란 환상은 빨리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면 도태할수 밖에 없습니다.

감정평가사도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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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