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컨설턴트 김찬경 미래유통연구소장(45)의 별명은 "프로 장사꾼"이다.

그만큼 장사에는 도가 텄다.

그는 단돈 3백만원을 들고 장사를 시작해 10년만에 10억원의 순익을 챙겼다.

이쯤이면 "프로" 호칭을 붙이는데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가 장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85년 5월.

한국유통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던 때였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서울과 영등포 민자역사 등 굵직한 유통점 입지조사
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번듯한 대학(성균관대 무역학과)에서 석사까지 딴 남편이 갑자기 유통
전문가라는 점잖은 직업을 팽개치고 만두장사를 하겠다니...

기가 막힌 아내는 "차라리 이혼하자"며 반대했고 장모까지 나서서 김
소장을 뜯어말렸다.

그러나 진짜 전문가가 되려면 현장경험을 해야겠다는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후 만두, 칼국수, 레코드샵, 고시원, 독서실, 속셈학원 등 10년간 8개
업종의 18개 가게를 잇따라 차렸다.

남들은 한번 성공하기도 힘들다는 창업에 김 소장은 어떻게 18번이나 성공
행진을 할수 있었을까.

물론 5년간 연구원생활에서 쌓은 입지분석 능력이 한몫했다.

그러나 그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서비스"가 그의 최고 장사비결이라고
강조한다.

다음은 그의 서비스 정신을 보여주는 일화.

장사를 시작한 이듬해 레코드가게를 운영하던 겨울이었다.

유치원 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가게로 들어와서는 엄마 생일선물로 줄
크리스마스 케롤을 골랐다.

그리곤 일백원을 달랑 냈다.

김 소장은 화를 내기는 커녕 꽃장식까지 달아 예쁘게 포장한뒤 30원을
거슬러 줬다.

포장된 테이프안에 "참 예쁜 따님을 두셨습니다. 생일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쓴 카드를 끼웠다.

"그애는 분명 가게근처에 사는 애입니다. 딸이 70원에 테이프를 사왔다는걸
알면 그 부모가 어떻게 할지는 뻔한것 아니겠습니까"

김 소장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얼마후 그 애의 엄마가 찾아와서는 고맙다며 테이프를 5개나 더 사갔다.

그뿐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는 김 소장의 친절을 칭찬하고 다녔다.

이른바 "구전마케팅"이다.

구전만큼 효과가 강력한 광고도 없다.

김 소장의 서비스는 유력 여성잡지사 기자의 귀에까지 들어가 지면에
소개되기도 했다.

덕분에 김 소장은 1년도 채 안되 4천5백만원의 총투자비를 회수했다.

"앞으로는 신화적 서비스를 창조하는 상점만이 살아남을 겁니다"

그가 컨설팅을 할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바로 10년간 경험에서 터득한 노하우다.

그가 장사꾼으로 변신할때 또한가지 목적이 있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은 꿈도 못꿨다.

미군부대 원조밀가루 푸대로 팬티를 만들어 입어야할 정도였다.

대학과 대학원도 과외, 제약업체 영업맨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으로
다녔다.

"돈에 한이 맺혔죠. 세상에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3년전 김 소장 만큼이나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형수가 폐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도련님, 돈이 최고가 아니예요. 버는 만큼 쓸줄 아는 것도 중요해요"라던
형수의 유언같은 말이 김 소장의 생각을 돌려 놓았다.

"돈은 벌만큼 벌었어요. 장사로 벌어놓은 돈에다 강의료, 인세, 원고료
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만 하죠"

김 소장은 그래서 IMF이후 무료 창업상담을 시작했다.

대기업들의 유통관련 조사를 대행해 주는 미래유통연구소 연구용역일에다,
각종 강연과 집필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하루에 5~6시간은 반드시 무료
상담으로 시간을 보낸다.

대상은 1억원 미만의 소자본 창업자.

"2천만원이 전재산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실직부부가 상담을 받고
스낵카사업으로 자리를 잡은뒤 고맙다며 찾아왔더군요. 마음깊이 감사하는
그 부부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낙담한 실직자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

이것이 창업컨설턴트 김 소장을 "프로"로 만드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 노혜령 기자 hroh@ >


[ 김 소장의 창업조언 한마디 ]

성공하는 창업업종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입지마다 맞는 업종이 따로 있다.

무조건 "무슨무슨 업종을 택하면 성공한다더라"하는 생각은 좋지 않다.

투자자금이 적다고 반드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만큼,거기에 맞는 업종과 방법을 찾으면 된다.

돈이 부족하면 동업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게 있다.

"가족이 같이하는 사업"이어야 성공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불경기일수록 군살은 빼고 서비스는 강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가족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동업할 경우에도 양쪽 집 부부가 직접 나선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종업원
숫자를 최소화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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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강현철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산업1부)
정태웅(경제부) 장진모(증권부) 김문권 류성(사회1부)
육동인 김태철(사회2부) 정종태(정보통신부)
박해영(문화레저부) 김혜수(국제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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