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섬직물 수출업체 성안의 재무제표에는 좀 색다른 점이 있다.

순금융부담률(이자비용에서 이자수익을 뺀뒤 매출액으로 나눈 값) 마이너스
1.3%라는 숫자다.

매출액의 1.3%를 순이자 수익으로 벌어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예금이 많고 빚이 적어 이자수익이 이자비용을 훨씬 앞지른 것이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이자비용은 23억9천만원.

반면 이자수익은 43억7천만원이다.

평균 매출액의 5.8%를 순금비용으로 날리는 다른 상장사들로서는 부러울만도
하다.


성안의 외부자금조달 내용을 보면 또한번 눈이 둥그래진다.

종금사 부채 제로.

상호신용금고 보험회사에서 빌려쓴 돈도 없다.

기계대여 등으로 리스회사와 거래가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은행 부채다.

물론 부채규모도 작다.

올해 기업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단기자금 회수한파나 종금사
폐쇄사태가 성안에는 남의 얘기였다.

그렇다고 뾰족한 자금운용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종금사 돈은 이자가 비싸다"(최재순 경리과장)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돈을 안꾼 것일 뿐이다.

은행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해줄테니 돈 좀 갖다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있는 성안으로선 비싼 종금사 돈을 쓸 이유가 없다.

최근 2~3개월 사이에는 증권사들까지 가세했다.

증권사마다 돌아가며 정부의 구조조정기금을 쓸 생각이 없느냐는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

성안이 이렇게 튼튼한 기초체력을 갖게 된 것은 "빚은 되도록 얻어쓰지
말아라.

남는 장사만 하라"는 박용관 회장의 방침 덕분이다.

천하가 다 아는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것을 "실천"했다는 데 성안의 파워가
있다.

성안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세계적으로 화섬수요가 줄어들면서 성안도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외부바람을 덜 타는 사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일반제품은 경기를 많이 탄다.

누구나 만들기 때문에 가격만이 유일한 경쟁무기가 된다.

가격인하 싸움의 끝은 뻔하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부실.

"여기서 벗어나자면 장기적인 눈으로 제품차별화에 주력해야 한다"
(최우경 전무)는 게 성안의 결론이었다.

그 과정에서 유혹도 있었다.

90년대초 중국 특수가 일자 국내 화섬업계는 중국수출 비중을 앞다퉈
확대했다.

그러나 성안은 당시에도 중국과 홍콩지역 수출비중을 10%이하로 유지했다.

대신 시장다변화에 진력했다.

시장다변화와 제품차별화는 동전의 앞뒷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장없이는 소량다품종 생산도 불가능하다.

현재 성안이 만드는 화섬직물의 종류는 무려 1백가지가 넘는다.

이들은 "스타텍스" "소프실" "로망스" 등 3개의 자체브랜드를 달고
수출된다.

복제품 단속에 골머리를 앓아야 할 정도로 파워있는 브랜드들이다.

수출지역도 전세계 75개국.성안의 제품이 한번이라도 수출된 나라는
1백15개국을 넘는다.

성안 영업부에 유난히 빈 자리가 많은 것도 이를 반영한 모습이다.

"지난달에는 무려 19명이 동시에 해외출장중"(오세홍 디자인개발실장)
이었을 정도다.

이들이 수주할 때는 원칙이 있다.

"돈이 남지않는 주문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안의 이런 수익성 위주 경영은 기초체력(재무구조)에 영양분을 공급,
재무구조를 더욱 튼튼히하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헤맨 올해 성안은 오히려 창립이후
최대의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동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백86%나 증가한 1백20억원의 순익을
올렸으며 매출도 1천5백45억원으로 무려 50%나 늘어났다.

창립이후 최대 순익이자 최대 매출기록이다.

경상이익률도 무려 11.4%.2.7%에 불과한 상장사들의 평균 성적과 비교하면
4배이상 월등하다.

지난 95년에만 해도 성안은 부채비율 3백27.7%로 제조업체 중간성적에도
못미치는 열등아였다.

그러나 차별화 제품을 기반으로 돈버는 수출을 지속했고 그 돈으로 매년
재무구조를 개선해갔다.

그 결과 11월말 현재 부채비율이 1백53%로 낮아졌다.

성안은 단 3년만에 부채비율 낙제생에서 우등생으로 변신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기업" 성안에 꼭 어울리는 이름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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