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 < 한국외국어대 교수. 경제학 >


미증유의 외환위기를 맞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우리 정책당국과
IMF당국은 정책의향서의 작성을 통해 정부의 정책의지와 구체적 프로그램을
밝히고 있다.

상호협의를 통해 구체적 합의가 도출되기까지에는 양 당국의 전문가간에
밀고 당기는 각종 실랑이가 상당히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정책당국과 어떤 실랑이가 있었던 간에 최종 권고는 IMF의 동의하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전제로 해 그동안의 IMF정책 권고의 타당성을 큰 시각에서
몇가지 간략히 살펴보자.

IMF는 초기의 대응에서 문제의 진단과 처방 모두에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다.

누가 보아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는 통화팽창과 방만한 재정운용이 정책의
기조를 이룬 남미국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원인에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IMF는 자신의 단골 메뉴인 재정긴축과 통화긴축이라는 극약처방을 한국에
내렸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IMF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를 그렇게 자주 찾아
정책협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성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웠거나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기업 부채비율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이 정책기조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와 금융긴축이 외환시장의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
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IMF가 한국경제의 침체정도를 과소평가하고 여타
주요 경제지표를 두고도 상당히 아주 잘못된 예측을 바탕으로 정책권고를
해온 것에 대해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우리 정책당국자의 의도도 반영된 결과이겠으나 IMF는 모든 정책수립의
기초가 되는 경제성장률의 추정을 두고 잘못을 계속해오고 있다.

작년말 IMF와 처음 협의할 때만해도 올해 성장률은 3%로 예상했었다.

그러던 것이 올 1월 1.4분기 거시경제지표 조정협의때 1~2%로 떨어졌고
5월중순의 4차 합의때는 마이너스 1%로 하락했다.

현재는 가상 낙관적 예측도 금년의 성장률이 마이너스 6%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나 IMF가 6개월 앞, 심지어 한달 앞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고 정책의
틀을 짜는 것은 잘못돼도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IMF에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우리의
경제를 두고 정책조언을 받아온 셈이다.

세계 어느 예측기관도 성장률을 당초 3%로 예측했다가 6개월도 안돼 마이너
스 1%로 조정하고 최종적 실적치가 마이너스 6%로 예상되는 상황이 나오는
큰 오차로 예측을 한 경우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만약 경제예측이 주된 업무인 어느 기관이 IMF와 같은 정도로 예측상 큰
오차를 범한다면 모르긴 해도 고객은 더이상 그 기관의 경기예측을 돈을
주고 사지않을 것이므로 시장에서 자연적으로 퇴출될 것이다.

외환시장의 안정과 경기간에 상충관계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만약 당초에
한국경제가 6%로 성장하는 것으로 예측했더라도 IMF 스스로도 초창기에 합의
한 정도의 고금리와 통화긴축, 그리고 재정긴축을 처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놓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우나 만약 우리
경제의 98년도 성장률을 당초부터 2%정도로 잡고 모든 정책을 추진했더라면
마이너스 6%성장이 아닌 마이너스 2%성장으로 최종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경제위기가 초래된 상황에서 예측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모르겠다거나 IMF만에 특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기서 꼬집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경제운용과 관련해 당분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되는
IMF의 계속되는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초기에 잘못된 처방을 주었음은 물론 IMF는 최근에도 계속 잘못된 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IMF는 최근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적자를 크게 늘리도록 권고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아시아 경제의 지나친 위축과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개되는 경상
수지 흑자확대에 따른 서방선진국들의 우려를 반영하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우리경제의 건전성을 크게 해치는 정책권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