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이후 서민들에게 가장 민감하게 와닿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실직의
고통이었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야할 직장인들에겐 유례없는 경기불황이
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퇴근 무렵 "내일 또 봅시다"라며 주고 받는 인사말에는 직장에서 밀려나지
말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명퇴(명예퇴직)는 명예롭게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기 보다는
실직이라는 멍에를 져야하는 "멍퇴"가 됐다.

또 갑작스럽고 황당하게 당한 퇴직통보는 "황퇴", 정년을 채우지 못한채
회사를 나가는 경우는 "조퇴"로 불렸다.

직장인들이 가장 겁내는 말은 "퇴출".

원래 이 말은 한계기업이나 부실기업을 정리하려는 정부당국의 의지를
나타낸 말이었으나 직장에서 해고를 뜻하는 말로 유행하게 됐다.

"노가리퇴"도 등장했다.

노가리는 명태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가 조금 작은 물고기.

이 노가리에 퇴직의 "퇴"자를 붙인 신조어다.

명퇴가 회사를 얼마간이라도 다녀 본 다음의 퇴직이라면 노가리퇴는
채용시험에 갓 합격한 대학졸업생들이 미처 입사도 하기전에 당하는 퇴직을
일컫는 말이다.

"대기족"도 노가리퇴와 비슷한 경우.

어려운 관문을 거쳐 취업이 되기는 했으나 기업체들이 뽑아만 놓고 정식출근
을 무기한 연기하는 바람에 집에서 전화통만 쳐다보며 대기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또 "잠수족"은 취업 "빙하기"를 견디다 못해 외부와 연락을 끊고 외출마저
삼가하는 취업준비생을 지칭한다.

"수면하"에서만 움직이는 이들중 여성들은 특별히 "해녀족"이라고 불렸다.

이즈음 "박카스"는 직장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단어로 다가왔다.

이 특정 제품이 공포의 대상이 됐던 이유는 TV광고에서 연유한다.

광고에서 청소부 아버지를 도와 새벽일을 나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힘들지.
내일부터는 나오지 마"라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실직의 공포에 떨고 있는 직장인들이 가히 두려워할 만한 한마디였다.

해고통보를 받은 많은 직장인들은 "나 박카스를 마셨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사회부 장유택 기자 changy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