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늦춰져온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를 거쳐 지난 1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함에 따라 전국민 연금시대가 열리게 됐다.
지난 88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제가 도입된 이래 95년 농어촌주민에
이어 내년 4월부터는 도시자영업자까지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케 돼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로서의 틀을 갖추게 된 셈이다.

그러나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한마디로 "많이 내고" "적게 받고" "늦게
타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다. 위기에 몰린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시킨다는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노후복지보장이라는 국민연금
제도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우선 8백90만 도시 자영업자들에 대한 연금제도의 확대적용은 시기선택이나
보험료의 공정성 확보 등에서 문제가 많다. 물론 언젠가는 시행돼야할 과제
이기는 하지만 IMF사태로 중소기업의 도산이 속출하는 취약한 여건하에서
서둘러 시행한다면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이들 자영업자에
대한 국세청의 소득파악률이 20%에 불과해 기초자료도 준비돼있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근거로 보험료를 부과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신고소득을
기준으로한 보험료 책정은 자칫 형평의 문제를 야기할 우려도 없지 않다.

또 그동안 근로자 사용자 퇴직금전환금에서 3%씩 부담해온 보험료를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4.5%씩 부담토록 조정한 것도 논란거리다. 보건
복지부측은 근로자 몫인 퇴직금전환금을 헐어내지 않기 때문에 매월 근로자가
부담하는 보험료를 1.5%포인트 올린다해도 결과적으로는 근로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설명이지만 당장 실질소득이 줄어들 근로자의 입장에선 매월 보험료를
50%나 더 낸다는 것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기본연금액을 급여수준의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수급 연령을 현행 60세
에서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상향조정키로 한 것도 기존 가입자의 수혜폭을
좁히는 편의주의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민연금제도는 출범 당시부터
낮은 보험료율에 높은 급여수준이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연금제 도입이후 불과 10여년 만에 기본연금액이 10%포인트나
낮아졌으니 국민들의 불신을 받을만도 하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관리주체의 방만한 운영이
더 큰 문제라고 볼 때 법개정안의 내용보다도 기금관리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할 것이다. 더욱이 도시자영업자까지 의무
가입하면 가입자가 모두 1천6백여만명에 연간 기금운용규모는 20조원대가
넘게된다. 정부는 연금제도 자체의 보완은 물론이거니와 기금운용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 국민의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언제까지나 주먹구구식
운영을 방치.조장한다면 불신 해소는 커녕 대규모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지도
모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