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은 국민 모두에게 시련의 한해였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가 외환위기에 따른 극심한 경기불황으로 실업과
소득감소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국가 부도의 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지 1년.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의 개혁작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30%까지
치솟던 금리는 10% 안팎으로 떨어지고 원화환율도 1천2백~1천3백원대에서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졌던 주식시장도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일단 한숨을 돌릴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경제가 이 정도나마 기력을 회복할수 있었던 공로자를 든다면 "수출"
을 들수 있다.

수출이 지탱해주지 못했더라면 4백억달러에 가까운 무역흑자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 해외 빚 상환은 물론 제2 외환위기에 대비해 외환보유고도 제대로
쌓을수 없었을 것이다.

실업은 훨씬 더 큰 폭으로 늘어났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구평회 한국무역협회장은 "수출마저 무너졌더라면 한국 경제는 파산상태에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올 수출은 10월말까지 1천85억달러.

작년 같은기간보다 3.0% 줄어들었다.

연간 수출이 감소한 것은 지난 58년(25.9% 감소)이후 40년만에 처음이다.

이처럼 수출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보다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조짐으로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동남아와 중국으로의 수출이 감소한 것이 주요인
이다.

여기에 금융경색으로 무역금융이 돌지 않고 환율급등과 외화부족으로
수출용 원자재를 제대로 구입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이 소폭 감소했다고 해서 F학점을 매기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일본 등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보면 우리 수출은 상대적
으로 괜찮은 성적이다.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대만의 경우 올 1~9월중 수출은 8백15억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9.2% 줄었으며 잘 나가던 싱가포르도 같은기간 12.0% 감소한
8백26억달러를 수출하는데 그쳤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5개국 수출은
평균 6.3% 줄어든 1천8백35억달러에 머물렀다.

금융 구조조정과 경기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일본은 10월까지
2천8백55억달러를 수출해 역시 작년보다 9.9% 감소했다.

중국만이 유일하게 9월말현재 1천3백41억달러로 소폭(3.9%)증가했을 뿐이다.

우리 수출이 상대적으로 괜찮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물량기준으로 작년보다 20%이상 늘었다는 점이다.

수출 물량이 20% 늘었는데 금액으론 3% 감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수출상품의
단가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이는 원화 환율 급등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긴 수출업체들이 수출가격을
큰 폭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수입은 지난 1~10월중 7백67억달러로 작년 동기대비 37.5%나
줄었다.

설비투자 감소에 따른 자본재 수입 격감, 내수부진에 따른 소비재 수입
감소, 국제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그 이유다.

이에따라 무역수지는 같은기간 3백18억8천만달러(통관기준)로 사상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1~10월중 1백8억달러의 적자를 냈으니 1년만에 무려 4백27억달러의
수지개선 효과를 거둔 셈이다.

연간 무역흑자는 3백80억~4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과거 기록이었던 88년(89억달러)의 4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그러나 올 수출이 남들보다 나았다고 해서 방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내년 수출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남아 중남미 중국 일본등 주요시장의 경기는 내년에도 풀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 최근 방한한 데일리 미 상무부장관이 "내년은 무역위기(Trade Crisis)의
해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주요국들이 수입장벽을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사회연구원 LG경제연구원 KDI 등 연구소들은
내년 수출이 올보다 소폭 늘거나 줄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만 수입은 증가세로 돌아서 무역흑자 규모가 2백억~3백억달러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수출이 예상보다 조금더 감소하고 수입은 좀더 늘어난다면 무역흑자는
그만큼 줄어들고 전반적인 경제운용에 큰 차질을 빚을수 밖에 없다.

특히 내년 4월은 만기연장됐던 외채 상환이 대거 돌아오는 기간이다.

무역흑자가 급격히 줄어든다면 외채의 롤 오버(만기연장)도 어려워질
것이고 이자 갚기에도 벅차게 될 것이다.

수출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관차다.

수출이 증가하면 고용이 늘고 국민소득 역시 높아진다.

수출이 10% 늘어나면 국민소득은 77억달러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은
1.8%포인트 높아진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도 1백70달러 늘어나 4인가족기준 연간 1백만원
가까이 소득이 증가한다.

또 41만명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해 실업률을 2%포인트 가까이 낮출수
있다.

한국이 IMF 관리체제를 맞게된 근본이유중 하나도 따지고 보면 매년
무역적자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우리 무역역사상 흑자를 기록한 때는 86년부터 89년까지 4년간에 불과했다.

그것도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향상돼서라기보다는 엔화 초강세로 가격경쟁력
이 높아진데 따른 것이었다.

무역적자만큼 외국으로부터 빚을 얻을수 밖에 없었으며 이는 외채급증으로
이어져 결국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된 것이다.

신원식 무역협회 상무는 "수출만이 살길이다"는 슬로건을 이제 예사롭게
지나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수출이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한번 수출로 미래를 열어갈 때다.

< 특별취재반 최완수(팀장) 박주병 김정호 채자영 윤진식 강현철 박기호
노혜령 이익원 권영설 윤성민(이상 산업1부)
조정애 양준영(이상 정보통신부) 정구학(경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