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자리 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다.

30년대 대공황의 대량실업 사태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80년대 초의
실업난은 정권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레이건 행정부가 발족한 81년1월 8백만명선이었던 실업자수가 82년12월에는
무려 1천2백만명으로 불어났다.

실업률은 10.8%로 전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이 이처럼 위험수위를 치닫게 된 1차 원인은 "2차 오일쇼크"였다.

정부의 긴축조치로 실물경제가 위축된 것도 심각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유야 어떻든 실업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레이건 행정부는
다각적인 대책을 즉각 실시했다.

83년1월부터 실시한 "고용창출법"이 대표적인 조치다.

가솔린 및 디젤의 연료세를 인상한 뒤 여기서 얻어진 연간 55억달러의
추가재원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폈다.

도로를 재포장하고 교량을 개보수하는 한편 대량 수송체제를 확립키 위한
각종 토목 공사를 벌였다.

같은 해 3월부터는 "긴급 고용창출법"을 추가로 발동했다.

총 46억달러를 투입해 고실업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사업 등의 원조를
실시했다.

지방 자치단체들이 공공 서비스 사업에 실업자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도 늘렸다.

지자체들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공 서비스부문에 대한 취로사업
이외에도 실직자들에 대한 직업훈련, 근로 학생에 대한 원조, 빈곤 가정에
대한 식료품 제공, 보험 서비스 등에 나섰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나눠 주기 위해 한시적으로 최저임금을
낮추는 조치도 병행했다.

미국 정부의 당시 실업대책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바로 83년에
실시했던 이들 일련의 고용법으로 이른바 "레이건 고용법"으로 불린다.

미국 정부는 실업사태를 해결하는 기본조치로 우선 실업자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가 경기후퇴에 의한 실업이다.

둘째는 기술부족등으로 경기가 회복돼도 쉽게 일자리를 찾기 힘든 구조적
실업자 군이다.

셋째는 직장 찾기가 어려운 청소년 실업자다.

이 중 첫번째로 분류되는 실업자들에 대해서는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실업
급여 연장 조치를 취하고 나머지 유형의 해당자들에게는 직업훈련 등을 적극
실시했다.

이같은 다각적인 실업대책은 국제유가 안정 등 외부환경의 호전과 맞물려
실업자들을 대거 구제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결국 80년대 후반에는 실업자수가 6백만명 선으로 낮아지면서 실업률도
5%대 초반으로 내려 앉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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