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경제위기는 기업에는 불황과 퇴출이라는 비극을 맛보게 했지만 한편
으로는 마케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했다.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개발해 선보인 계기가 됐다.

진정한 장사가 무엇인지를 알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된다.

만성적인 초과수요상태에서 그동안 만들어만 놓으면 팔리던 공급자위주의
시대에는 굳이 마케팅이란 고상한 말이 필요없었다.

그러나 공급은 넘치고 수요는 오그라든 IMF시대에 마케팅은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기술이 됐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고 불황이란 시련을 통해 기업은 제2의 탄생을 위한
기틀을 잡았다.

기업들은 다채로운 IMF형 마케팅기법을 개발했고 이를 적절히 활용했다.

IMF 초기에는 일종의 패닉현상이 작용해 할인마케팅이 유행했다.

급작스런 소비감소로 이에 적응못한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값을 깎아
주는게 마케팅의 최우선수단으로 등장했다.

할인은 마케팅의 가장 초보적 형태다.

여기다 지난 7월 세계최대유통업체인 미국 월마트의 국내상륙으로 할인
경쟁은 더욱 거세졌다.

"우리가 제일 싸다"며 소비자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가격만으로는 소비자들을 불러들이는데 한계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기업들은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을 속삭이며 이미 퇴역한
70~80년대 예비군상품들을 재등장시켰다.

이른바 복고풍마케팅 열풍이었다.

마침 TV드라마도 가난한 시절의 그림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고 광고도
복고바람을 촌스럽게 그려냈다.

길거리에는 붕어빵과 뽑기 등 옛먹거리들이 다시 등장했다.

연탄 겨울내의 리필볼펜이 인기를 끌었고 잊혀져가던 부라보콘 뽀빠이과자
키스바 바밤바 등을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냈다.

아예 외국자본에 대항해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도 등장했다.

IMF시대 초기에 경제신탁통치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국민감정을 자극하자
외국상품 배격운동도 이런 마케팅에 일조를 했다.

콜라독립 8.15는 이런 흐름을 적절히 이용하며 국산콜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반면에 진정한 국산품논란이 벌어졌고 브랜드는 외산이라도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외제같은 국산제품들이 새로운 국산품의 범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소비빙하기라고 불릴만큼 내수가 침체한 가운데 사용법 등을 거꾸로 뒤집은
역발상마케팅이 히트를 치기도 했다.

발화장품, 차가운 우동, 국물없는 라면 등이 선보이기도 했다.

소비심리를 조금이라도 일깨워 보자고 최근에는 경품마케팅이 IMF 마케팅의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다.

경품내용도 몇십만원대가 아니라 승용차와 1억원대의 아파트까지 등장하며
경품인플레현상을 부추겼다.

IMF는 기업들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협동의 정신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공동마케팅으로 기업의 자원을 서로 활용해 윈윈게임의 전형을 보여 주기도
했다.

전략적 제휴차원에서 이뤄진 이같은 공동마케팅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가 세계최대의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시장을 공동개척했다.

베니건스는 메뉴에 윈도98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고객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
의 게임패드 게임CD를 나누어 주었다.

20~30대가 주류인 고객을 손을 잡고 새로 개척하자는 취지였다.

전략적 제휴는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호텔들은 회원들이 똑같은 조건으로 다른 호텔을 이용할수 있도록 했다.

마케팅비용을 줄이고 소비자만족도도 높이자는 의도였다.

IMF 마케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장기회가 생길때마다 날쌔게 이를 포착했다.

월드컵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할 경우 경품을
준다는 월드컵마케팅으로 한때 시장을 후끈 달궈 놓았고 박세리가 세계골프
여왕이 되자 스포츠마케팅을 본격화했다.

스포츠가 마케팅에 얼마나 큰위력을 미치는지는 타이거 우즈를 내세워
재기에 성공한 나이키가 보여 주었다.

삼성그룹도 박세리에 들인 투자비용을 다 뽑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기회를 붙잡으려는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금강산관광을 계기로 금강산마케팅이 쏟아지고 있다.

OB맥주가 이벤트캔맥주를 팔고 금강산 봉우리 이름을 딴 등산복도 등장했다.

금융회사들은 금강산 여행적금이나 금강산 이름을 붙인 신탁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IMF 한파가 마케팅에 미친 가장 큰영향은 기업들을 철저한 고객지향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고객만족 자체를 마케팅의 기본으로 내세운 기업들이 저마다 히트를 치고
있다.

"고객은 왕이다" 정도가 아니고 "고객은 황제고 지존"이라는 얘기도 등장
했다.

고객이 필요한 것을 미리 알고 이런 니즈에 맞추어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게 마케팅이란 생각이 자리잡은 것은 IMF가 안겨준 선물이기도
하다.

[ 특별취재팀 : 유통부 = 김영규 서명림 김상철 김광현 안상욱
김도경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