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눈에 띈다.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 자리여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한두마디라도 나오면 상당한 흥미를 끌수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큼 논란을 빚는 소재도 드물다.

아시아적 가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정실주의와 이중규범,
부정부패, 권위주의 등이 아시아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 반론자들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외환상황이 좋지않은 시점에 국제투기꾼들이 들이닥쳐 주가와 환율을 들먹여
놓은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오히려 그동안 기적을 일으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관습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중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순기능은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중도론을 펴는 학자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옹호론자의 견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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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용하다 ]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아시아의 IBM(Int''l Big Mouth)으로 통한다.

그의 "큰" 입을 통해 쏟아지는 말의 대부분은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옹호 일색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함께 마하티르 총리가 아시아적 가치의 대표적
전도사로 불리는 것도 그래서다.

마하티르 총리는 아시아적 가치가 결코 아시아 외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지난 30여년간 아시아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먼저 정부 및 정책부문.

선진국들은 그동안 부패한 정부와 관료, 그리고 비효율적인 정책 등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마하티르는 그러나 결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시아 각국 정부는 경제성장을 돕기위해 나름대로 환경을 조성해왔으며
따라서 외환위기를 기화로 이들을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하티르는 또 이들 정부가 추구해온 경제시스템도 분명 "필요악"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정부와 경제시스템이 원인이었다면 외환위기는 오래전에 일어났어야
옳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거의 유사한 정부와 시스템이 아시아경제를 이끌어왔지만 지난 30여년동안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두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일궈냈다.

또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도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이를
굳이 아시아적 가치로 해석해선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마하티르는 얼마전 미국에서 발생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사태"를
예로 들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정부는 부정부패와 정실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는지를 반문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파산직전에 몰린 미국의 헤지펀드인
LTCM에 긴급구제자금을 지원하도록 미국 유럽 등 관련 은행들에 "명령"했다.

이처럼 LTCM을 발벗고 나서서 구제한 것은 이들 은행이 펀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눈에 이는 분명 정실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돈(예금)을 자기 자신들을 위해 "오용"하는 것은 이들이
비난해온 정실자본주의와 별로 다를게 없다고 맞받아친다.

관료들의 오직사건은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게 마련이기도 하다.

민간부문도 마찬가지다.

마하티르는 외채에 의존한 아시아기업들의 경영관행이 무조건 비난받아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들 기업의 외채상환계획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만
갖춰졌다면 외채에 의존한 경영관행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들의 외채상환계획을 일시에 혼란으로 빠뜨린 환투기꾼들이
오히려 원흉이었다고 항변한다.

마하티르는 결국 자유시장 경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고정환율제와
자본규제 정책을 도입했다.

스스로 "이단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하티르는 "오늘날 전세계 국가들은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최선이라고 강요당하고 있다"며 "이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이단자로 낙인찍혀
벌을 받든지 두가지 선택만이 앞에 놓여있다"고 비난한다.

마하티르는 이를 "전제적 자본주의(Absolute Capitalism)"라고 이름 붙였다.

전제주의적 자본주의는 통화와 주식시장 공략을 통해 제국의 독재자처럼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전제적 자본주의가는 아시아인들을 경제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잘못에 대한 죄가를 치르기는 커녕 아시아국을
길들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오히려 칭찬받고 있는 현실도 비판한다.

마하티르는 "기독교도들이 종교재판 등을 통해 비기독교인을 마구잡이로
학살했던 잘못을 깨닫는데 3백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며 "자유경제시장
시스템이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는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라고 되묻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