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수부양을 위해 상당히 의욕적인 경기진작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3백억달러를 제공하겠다는 "미야자와 플랜"
도 내놓았다.

일본발 세계공황의 발생을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이상 "일본책임론"을 꺼내지 말라는 정도다.

그러나 일본의 그리 사정은 만만치않다.

성장률 실업률 주가 등 각종지표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성적표는 한마디로
2차대전이후 최악이다.

일본경제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가.

일본이 세계경제위기를 막는 방파제역할을 과연 해낼수 있을 것인가.

오부치 신정부의 내각특별고문을 맡고 있는 교텐 도요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을 만나 일본경제의 과제와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교텐 고문은 일본에서 국제금융 문제에 첫손을 꼽는 인물이다.

< 도쿄=김경식 특파원 kimks@dc4.so-net.ne.j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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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망도 불투명하다.

일본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문제점은 두가지다.

하나는 경기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다.

이 문제는 수년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도록 내버려둔
것이 큰 잘못이다.

일본정부의 대책이 지지부진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기업경영자들의 노력부족도 또하나의 문제로 꼽을수 있다.

부실채권 문제는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안고있는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금융상품 서비스의 급속한 움직임에 대응할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못한데
따른 것이다"

-금융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재생관련법안이 마련됐기 때문에 이제 본격적으로 금융시스템 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해결하고 기능이 마비된 금융부문의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의 사례에서도 이미 확인됐다.

국내총생산(GDP)의 10%정도인 50조엔 정도는 투입할 각오를 해야 한다"

-공적자금만 투입되면 금융시스템이 살아날 것으로 보는가.

당장의 부실을 털어내더라도 시스템 자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재생을 위해 30조엔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마련돼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도 마련됐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위기의식을 갖고 대승적 견지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금융거래의 담보대상이 되는 토지와 부동산가격의 하락을 막을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할것이다"

-엔화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다.

일본경제에 대한 불안으로 달러당 엔화환율이 1백50엔대 문턱까지
떨어졌다가 한때는 1백10엔대로 까지 오르기도 했다.

환율변동이 지나친 것 아닌가.

"선진국 통화간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아시아위기 발생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을수 있다.

일본은 물론 선진국들이 환율문제를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외환시장의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엔화 환율안정 대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국제 외환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고 있다.

앞으로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이머징마켓을 겨냥한 외환투기바람은 일단 지나간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는 실제수요에 따른 외환동향이 환율을 결정하는 쪽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난 3년동안 지속돼온 엔약세(달러강세) 국면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고가 실현될 경우 동남아시아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리해질 것이다.

수출경쟁력의 회복, 일본의 직접투자확대, 외환시장에서의 통화불안 해소
등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경제지원을 위해 3백억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미야자와플랜이 발표됐다.

일본의 자세가 달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저축잉여분을 계속해서 아시아 등에 지원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자금부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자본지원에 대한 필요성이 종전보다 오히려 더 커진 상황이다.

민간베이스의 직접투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85년 프라자합의이후의 엔고로 일본에서 해외로 빠져 나간 민간자본이
현지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민간직접투자는 기업진출 형태로 이뤄진다.

이 경우엔 자본은 물론 자본을 관리하는 노하우와 산업기술이 한꺼번에
이전된다.

현지고용도 창출된다.

제조상품의 시장까지도 함께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단기 투기자금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일본의 산업계는 아시아의 자원이용과 공동 판매시장 개척이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직접투자를 늘려야 할것이다"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아시아 국가간의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과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아시아에서의 다국간 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구상이 여러번 거론됐다.

그러나 미국 등의 견제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최근들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면서 또다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달러일변도의 외화정책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정책의 기본틀을 개혁하려는 움직임까지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논의들을 묶어 다국간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검토돼야
할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이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시아발 경제위기가 러시아 중남미를 거쳐 마침내 미국에 까지 번졌다.

미국경제가 어떻게 될것인가.

"미국은 지난 8년동안 호황을 누려 왔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시아경제 침체와 중남미 경기불안 등으로 미국경제도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경제가 안고있는 두가지 문제는 경상수지적자 확대와 개인부채 증가다.

대외적자증가로 대외순채무가 이미 1조달러에 이르고 있다.

달러폭락의 위험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개인채무의 증가는 주가상승에 의한 평가익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볼수 있다.

주가가 급락할 경우 경제전체에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은 세계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 맡아줘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착실하게 개혁을 진행해 왔다.

한국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97년말의 유동성위기를 일단 잘 넘겼다고 생각한다.

IMF 프로그램에 따라 재정개혁, 금융부문의 리스트럭처링, 대기업들의
구조개혁 등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아주 부러울 정도다.

당분간은 경제운영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협조로 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비교적 빠른 시일안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장속도도 다시 정상을 되찾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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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31년 가나가와현 출생
<> 55년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 55년 대장성 근무
<> 86년 대장성 재무관(국제담당차관급)
<> 90년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 92년 도쿄은행 회장
<> 95년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