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담고 있을 말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중화"는 그저 중국인들 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러나 신세기를 앞둔 지금은 다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오는 2015년께면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는 2030년에는 OECD국가 전체를 합친 경제규모의 80%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1이 몰려있는 중국.

그 거대한 용이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경제 성적표는 이미 최상위권에 달해있다.

중국의 지난 95년 GDP(구매력기준)는 3조1천9백억달러.

미국(6조1천5백억달러)의 절반을 넘어섰고 일본(2조4천6백억달러)보다 많다.

중국의 지난 91년 이후 GDP성장률은 연평균 11.2%.

외환보유고도 1천4백억달러로 세계 2위다.

그러나 주권을 돌려받은지 1년이 조금 넘은 홍콩까지 합하면 2천3백억달러
(작년 11월기준)에 달해 세계 최대 규모다.

홍콩을 포함한 작년 교역규모는 7천2백23억달러.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OECD가 최근 발간한 "중국경제의 장기적 성과"라는 연구보고서도 "중국의
경제규모가 오는 2015년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7%대에서 앞으로 5.5%까지 낮아질
것으로 가정하고 작성된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 과정에서도 중국의 위상은
잘 나타났다.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할 것이냐는 것이 국제금융계의 초미 관심사였다.

중국이 위안화가치를 떨어뜨릴 경우 아시아경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세계의 안정을 좌우할 만큼 이미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힘을 이처럼 드러난 수치만으로 측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직 개발중인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덩샤오핑(등소평)의 뒤를 이어 장쩌민(강택민)주석 체제가 열리면서 중국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주룽지 총리 후진타오 국가부주석 등 젊은 테크노크라트가 뒤를 받쳐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인 안정도 확보되어 있다.

이념을 위한 "대장정"의 시대가 끝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장정"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정부조직 축소, 군 소유기업의 청산, 부실금융기관 청산, 공기업의 정리해고
등으로 개혁은 구체화되고 있다.

경제의 덩치만 커지는 게 아니다.

부국과 함께 강병전략도 줄기차게 추진되고 있다.

무기첨단화는 핵심사업이다.

러시아와 합작으로 수호이 27전투기를 올해부터 연간 20대씩 생산하는 것을
비롯 프랑스 이스라엘 등으로부터는 최신형구축함과 핵잠수함기술을
도입키로 했다.

이 점이 경제대국 일본과의 차이다.

경제의 덩치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물리력이 뒷받침된 진정한 강자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 시장건설은 아직도 "실험중"이다.

경제개혁만 하더라도 중국사람들에게 아직 "해고"라는 말은 익숙지않다.

오히려 "철밥통"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부실금융기관을 청산하고 국영기업체 직원을 정리해고하는
등의 자본주의식 작업들이 저항없이 뿌리 내릴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외형의 성장에 걸맞은 선진적 사회구조를 갖추기는 요원한 일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또 국제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잃지 않으려는 미국과 일본 등의 견제도
무시못할 장애물이다.

그러나 중국의 저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지난 78년말 개방을 표명하며 죽의 장막을 연지 20년만에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리더로 발돋움했다는 게 이를 반증한다.

사회주의라는 낡은 틀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동하기 시작한
소프트웨어는 시장경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통합이라는 제3의 이념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실험을 하고 있다.

"중화"를 꿈꾸는 거대한 공룡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위협하며
"사회주의적 시장"이라는 21세기적 이념을 구체화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1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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