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 한신대 중국학과 교수 >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하는 주요한 방법이 주변 국제환경의 안정과
수출증대, 그리고 외자유치에 있다면 우리의 최대 흑자시장이자 주변강대국의
한 축인 중국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동안의 한.중관계는 정치적 효과에 치중한 나머지 경제관계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위정치(high politics)로 이전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김대통령의 중국방문은 명분과 실리를 살린 좌표를 함께 만든
다는 자세 속에서 다음의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한.중수교성명에 충실하면서 "하나의 중국"원칙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하고 중국의 WTO 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지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북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것임을
중국을 향해 재삼 강조할 필요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쩌민 총서기와 김정일 총비서간의 정상회담이 남북
한관계와 한.중관계에도 순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빙은 중국의 사실상의 현상유지정책을 변경시키면서
통일한국에 대한 "건설적" 역할을 유인할 수 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공동성명"에서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중국이 지지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도적으로 다자안보체제의 일환으로 6자회담을 제기하는 등
주변강대국을 견인하겠다는 과욕을 경계하고 4자회담을 내실화하면서 경협
확대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중국의 미온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각료회담의 정례화나 군사안보 교류
를 정식으로 제안하면서 그 동안의 한.중관계의 한계를 우회적으로 제기할
필요는 있다.

둘째, 양국간 경제관계를 질적으로 한차원 높여야한다.

사실 그동안의 양국간 교류는 단순한 상품과 자본의 왕래에 불과했다.

그나마 IMF체제 이후 한.중교역규모가 금년 8월 현재 전년대비 수출은 8.3%,
수입은 33.9% 감소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도로 이루어져오던 대중투자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중국은 양국간 교역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을 들어
무역역조를 시정하라고 요구해올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상품을 사고 팔거나 역조를 시정하는 단계를 극복해야
한다.

실질적인 교류협력의 차원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의 부족한 분야를 메워주면서 한국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과정에서 실질
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 즉 상호보완적 관계가 돼야하는 것이다.

98년 이후 3년간 사회간접자본시설에만 7천5백억달러를 투자하게 될 "중국판
뉴딜정책"에 한국의 참여공간을 확대하고 중국 내부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그런 차원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금년 6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방문시 33억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성사시킨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또 한.중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타결되지 않은 "중형항공기 합작개발
사업" 등에 대해 항공기용 소재부품 기술교류, 소형항공기 합작개발 등
가능한 것에서 범위를 확대하는 점진적 방법을 수용하는 한편 한국기업에
대한 현지금융지원, 원전 발전사업, 어업협정,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
대륙붕개발 등의 쟁점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를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소한 경제적 수준에서의 교류 확대와 분쟁 처리를 위한
"경제각료회담"을 제의해 볼 수 있다.

셋째, 한국의 재외동포 법안에 대한 중국의 비판적 대응이다.

그동안 중국은 동북지역 조선족들의 민족의식 고양을 우려하여 선양의
한국영사관 개설에 소극적이었다.

특히 우리가 조선족 동포에게 내국인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재외
동포법안"을 제정하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영사관 개설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 문제는 이번 방중기간 동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민족정책을 지지하고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지역에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지원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
하여 영사관개설을 통한 양국경협의 제도화와 불균형적인 인적교류에 대한
새로운 틀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방문을 통해 "민주화" "인권" "범세계적 가치"와 같은 거대담론
보다는 한국의 구조조정정책, 국유기업 개혁, 금융개혁, 행정체제 개편,
시장화 등 개혁추진과정의 경험을 중국과 공유하면서 IMF체제 이후 중국사회
에 광범하게 깔려있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전환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합리성의 기본은 일관성을 가지는 데에 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취약하지만 대인적으로 강하다.

이번 방문을 통해 한.중양국이 국가이익과 정서적 교통을 절묘하게 조정하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1일자 ).